주 제



E.P. 톰슨, 역사 속에서 미래를 보다
 

에드워드 톰슨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것에 대하여, 대부분은 의아해 할 것이다. 혹자는 도대체 누군데 띄워주려고 하나 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의 혹자들은 이 작업을 철늦은 짓거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톰슨을 다시 소개하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요컨대 그는 여전히 너무 안 알려져 있거나 너무 덜 알려져있다. 또는 우리역시 아직도 "톰슨에 대해서 알고 있을 뿐이지 그를 이해하는 데까지 이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작업 이전에, 아직 그의 주요 저작조차 하나도 국역된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차라리 놀랍기까지 하다. 알튀세르주의가 이 땅에서 그토록 융성할 때에도 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이었던 {이론의 빈곤}는 좀체 이야기되지 못했다. 톰슨의 가장 중요한 역작인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마저 우리는 전설처럼만 전해들을 뿐이었다.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스케치에 해당하는 소개논문 몇편과 반핵운동에 대한 글 두 편 말고는 우리가 볼 수 있는 국역자료도 거의 없었다. 1993년 그의 타계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신좌파 1세대의 비조가 되는 이 걸출한 인물을 이제야 다룬다는 것에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단지 한참을 지체된 작업일뿐이라는 것에.  
그러나 우리는 이 소개작업 역시 단지 과거를 향수하거나 추도하기 위한 것만은 아님을 이야기해야 겠다. 톰슨의 연구와 정치활동 자체가 '과거에서 미래를 발견'하고 현재를 새로운 미래로 추동하는 성격의 것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요컨대 그에 대한 재조명은 새로운 정치적, 이론적 현재성을 획득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그의 생애나 계급이론을 다시 상론할 지면은 없다. 이 <주제>에 묶인 글들이나 기존의 소개논문들에서 어느정도 충족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이론적 기여였던 '계급형성'의 개념은 당연히 우리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톰슨의 계급형성이론이 집단적인 계급 '경험'을 매개로한 주체적 인식과 자기구성의 과정임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이는 구조주의적 계급이론 및 사회학적 계층론의 정태적 분석양식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검토될 수도 있고, 구조와 행위의 연관이라는 사회이론의 전통적 관심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물론, 이 논의는 한국사회의 계급형성의 지형과 특성, 그리고 최소한 한 세대 이상의 장구한 기간이 소요되는 이 과정의 주체적 맥락에 대한 연구로 연결되어야할 과제이다. 지금의 지역주의나 앞으로의 통일정국에서 예상되는 지배계급의 수동혁명에 대한 대응으로서 이 논의는 더욱 정치적인 의미를 갖는다. 아울러 노동자계급의 기억, 경험의 중요성, 능력의 발전가능성에 대한 그의 천착을 환기하자.

두번째로, 일찍이 스탈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의 흐름에 맞서 투쟁을 전개했던 톰슨의 현재성이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좌파만큼 80년대에 스탈린주의에 집착하고 90년대 초반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에 따라 해체를 경험한 집단도 드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1956년의 톰슨과 신좌파 1세대로 돌아간다. 그들이야말로 이미 좌파의 '제 3의 길'을 개척하고 걸어온 이들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들은 정치적으로 한 '세대'와 '흐름'을 이루어냈다.

세 번째 살펴볼 것은 '절멸주의(exterminism)' 개념의 재전유 가능성이다. 미국의 이라크 공습이 컴퓨터게임이나 뮤직비디오처럼 미디어 속에서 소비되는 모습이나, 한반도의 항상적인 군사적 위기라는 상황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평화운동은 결코 좌파운동의 한 장식거리가 아니라, '문명의 마지막 단계' 앞에서의 절실한 투쟁일 수밖에 없다. 또한 통일국면을 전후로 해서는 평화군축이야말로 우리의 준비여하에 따라서 민중운동의 이니셔티브를 좌우하는 이슈가 될 것이다. 물론 우리가 톰슨과 END운동에서 배우는 것은 대중적 권리에 대한 의식과 '정치적 상상력'이다. '절멸주의'라는 관념은 환경적 위기에 대한 논의로 쉽게 넘어갈 수 있기도 하다.

네 번째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있어 사회주의적 휴머니즘의 함의이다. 생산성, 경쟁력, 효율성, 린(lean) 등의 개념과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대안적 삶의 질서'나 새로운 인간적 가치에 대한 논의로서, 톰슨의 사회주의적 휴머니즘은 한 전범이 되어준다.
이러한 것들과 함께, 프랑스 구조주의적 맑스주의와의 논쟁 등 여러 검토지점들이 있다. 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은 톰슨 자신의 삶과 투쟁이 유기적 지식인의 한 존재양태를 보여주었다는 것이겠다.

여기에 <주제>로 묶인 글들은 톰슨의 단면들을 잘 보여주는 것들도 있고 대표적인 심화연구 논문들도 있다.
먼저 로빈 블랙번의 [에드워드 톰슨과 신좌파]는 톰슨의 타계 직후 <NLR>의 입장에서 톰슨이 이 잡지와 맺었던 관계, 신좌파의 형성과 전개에 있어서 톰슨의 영향등을 서술한 글이다. 그 다음에 실린 하비 케이의 추도사를 이와 보완해서 볼 수 있는데, 자신이 톰슨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케이는 이 글에서 톰슨의 인간적인 면모들을 흥미롭게 드려내고 있다.
{읽을꺼리}의 지면에도 벌써 여러차례 소개된 엘렌 메익신즈 우드의 [톰슨과 토대/상부구조 논쟁]은 역사유물론의 재구성이라는 작업에서 매우 중요한 논문이다. 관심이 없는 이들이 읽기에는 조금 딱딱하겠지만, 우드는 알튀세르주의에 대항하여 톰슨의 이론을 '창조적'으로 독해해낸다.
케이트 소퍼의 글은 톰슨의 이론과 정치역정의 상호맥락을 몇 개의 단계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다. 한 사람의 연구와 작업을 정치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문헌이라는 생각이다.
그 다음으로 저 유명한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서문을 실었다. 맑스의 [정치경제학비판 서문]만큼 자주 인용된다는 이 글을 최초로 국역했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번역이 미흡하더라도 양해해 주시기를.그 뒤에 실린 톰슨의 자작시 2편은 덤으로 주는 선물인 셈이다.
 



● 관련해서 읽기


<학위논문>


 

[내려받기]

에드워드 톰슨과 신좌파 . . . 로빈 블랙번
맑즈주의 역사가, 그리고 급진민주주의자 - 톰슨을 위한 추도사 . . . 하비 J. 케이
톰슨과 토대/상부구조 논쟁 . . . 엘렌 메익신즈 우드
톰슨의 사회주의적 휴머니즘 . . . 케이트 소퍼
<영국노동계급의 형성> 서문 . . . E. P. 톰슨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