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제



국제주의 이념과 운동

 

"Working TV"는 캐나다의 브리티쉬 콜럼비아에 위치한 지역 네트워크 방송국이다. 여기서 얼마전 제작하여 인터넷에 올려놓은 한 비디오 파일은 자못 인상적이었는데, "새로운 국제주의"라는 이름으로 각국의 메이데이 풍경을 27분짜리 클립으로 만든 것이었다. 남아공과 쿠바, 캐나다의 노동자들이 축제같은 집회를 열고 제 3세계의 아동착취 사업장(sweat shop)들을 규탄하는가하면 다자간투자협정(MAI)에 반대하는 결의를 제출했다. 화면은 바뀌어 후반부 1/3 가량은 서울의 메이메이에 할애되었다. <철의 노동자>와 <단결투쟁가>가 울려퍼지는 집회 장면을 영어 나레이션으로 청취하는 기분은 묘하다. 한국의 활동가와 Working TV의 운영자인 줄리어스 피셔가 인터뷰를 나누고, 한국 노동자들의 상황과 요구가 소개되었다. 광고와 자막이 올라가면서 배경에 깔리는 화면은 '놀랍게도' 풍물패의 율동과 북소리이다.

이는 확실히 전례없는 관심을 반영한다. 서구의 연구자들과 저널리스트들은 사회운동의 동력을 간직하고 분출하는 새로운 지역으로 흔히 브라질, 남아공화국과 함께 남한을 거론한다. 걸맞지 않게 주목을 받고 있다는 작은 민망함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IMF의 구조조정 프로그램 하에서도 몇십만의 조직된 저항운동을 전개할 수 있는 운동역량을 보여준 나라는 달리 없었다. 그만큼 이 땅의 상황은 절박하면서도 세계적 수준에서도 '결정적'이다.

더우기 그 관심은 밖에서 안으로의 방향만이 아니다. 몇해 전 그린피스가 방한시위를 했을 때, 그 자체가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도 그런 '국제적' 운동들에 제법 익숙하다.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투쟁으로부터 영국의 리버풀 항만 노동자(Liverpool Dockers)와 프랑스의 실업자 운동, 그리고 최근의 호주 항만노조의 투쟁과 미국 GM사의 파업투쟁까지 다른 나라의 투쟁들이 우리의 직접적 관심권 안에 들어와 있다. 96-97년 총파업 당시 국제자유노련(ICFTU)의 간부를 위시한 여러 외국인들이 직접 명동성당까지 찾아와 연대의 힘을 실어준 이래, 우리는 타국의 노동자들에게도 지지서한 한통이라도 발송할 수 있는 발상(mind!)을 갖게 되었고, 뒤이어 닥친 IMF 사태는 그러한 외국의 사례들이 단지 이방인적 호기심의 대상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공간과 시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라는 점을 여실히 깨닫게 만들었다. 국제사면위원회(Amnesty International) 한국지부 같은 비정부기구들은 더욱 본격적인 국제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김영삼정부의 '세계화'가 실제로 가져온 것은 배낭여행 붐과 자본시장 개방 정도였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의 처지에 공감하고 저명한 대인지뢰 철폐 운동가의 방한을 반길 수 있는 '세계화'를 체험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자본은 하루에도 수백번 국경을 넘나들며 자신의 집행기구를 '지구화'하고 있는데 반해 프롤레타리아의 국제주의는 오히려 맑스가 활동했던 제 1인터내셔널 시기보다 훨씬 후퇴했음을 지적한다. 미 상공회의소가 한국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증가시키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하고, IMF의 한국사무소가 구조조정 프로그램 시행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조지 소로스마저 대안적 국제 금융공사의 창설을 요구하고 있는 마당에, 예의 그 '국제주의'를 떠올려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하지만 다른 많은 관념들이 그러하듯, 국제주의 역시 우리에게는 오랫동안 잊혀졌던 개념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일제시기 사회운동에서는 훨씬 활발한 국제주의적 정서와 실천들이 있었다. 사회운동의 여러 지도자들이 일본과 러시아로 유학을 가거나(혹은 쫓겨가거나) 직접 국제회의들에 참여하기도 했고, 세계 운동의 동향에도 놀라울 정도로 정통해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전쟁 이후 냉전의 벽--더우기 우리에게는 '분단'의 벽--과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가 만들어 놓은 장벽과 함께, 국가발전 이데올로기가 갖는 견인력은 우리의 시야를 완전히 좁혀놓을 수 밖에 없었으리라.


이번에 기획된 <주제>에서 우리는 국제주의 이념과 운동의 간략한 맥락과 함께 가능한 현실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적 수준에서 볼 때, 60년대 신좌파운동 속에서 들끓었던 국제주의의 기운은 80년대의 후퇴와 함께 침잠해있었다. 대부분의 좌파정당들이 공언했던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는 대개는 어떠한 실천도 동반하지 않는 오직 명목상의 것일 뿐이었다. 최근에 들어 국제주의 운동의 기운은 몇가지 수준에서 복원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20세기 이래 세계적 수준에서 국제주의의 물결은 몇번의 계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러시아 혁명과 초기 코민테른의 시기, 스페인 내전 및 레지스탕스 운동, 60년대 반전평화운동, 최근의 국제적 노동운동 등.

물론 국제주의를 과장하는 위험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예컨대 만델(E. Mandel)은 기회있을 때 마다 "자본과 생산력의 국제화 수준이 높을수록 계급투쟁은 더욱 국제적인 것이 된다"고 이야기하지만, 이것은 영국의 광부파업과 남아프리카의 폭동 및 폴란드 연대노조의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새로운 성명서를, 똑같이 '계급투쟁의 상승' 및 혁명세력에 유리한 전진의 모든 부분으로 간주하는 다소 환상적인 해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와 같은 위험성은 실천에 있어서도 세계체제적 수준의 가능성만을 되뇌이는 월러스틴이나 기든스, 또는 막연한 대안적 국제규범을 기대하는 지구적 시민사회론자들에서도 또다른 형태로 나타난다고 볼 수 있다.

뭉크(R. Munck)는 계급투쟁은 여전히 특수한 역사에 종속된 우세한 민족적 토대를 가지고 있고, 때문에 '세계적 계급'에 대해 말한다는 것은 관념적인 추상화라고 이야기한다. 문제는 현실에서 투쟁의 접점이 어디서 형성되는가, 그리고 효과적인 반자본주의 투쟁이 결합될 수 있는 공간과 방향은 무엇이냐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가 자본에 의해 나타난 국제화를 재생산해야할 아무런 필연적 이유도 없을뿐더러, 새로운 가능성의 요소들을 전혀 무시할 필요도 없다. 킴 무디(Kim Moody)는 '국제적 사회운동적 조합주의(internaltional social-movement unionism)'라는 노동운동 내의 새로운 경향에 주목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무디가 보기에 '국제적 생산사슬'이야말로 초국적 기업들에 대처하는 다국적 전략을 발전시키는데 관건적인 요소이다. 핵심 장소에서의 국부적 파업들은 이들이 국제적 생산체계 전체나 혹은 그 일부를 폐쇄할 수 있는한, 이러한 전략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역 노조들의 다국간 공동행동들은 최대규모의 초국적 기업까지도 주요 시장 내에서 불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생산의 사회화의 진전은 물론 이러한 여지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적'으로 국제적 계급실천을 낳지는 않는다. 이 역시 고도의 조직 수준과 단호한 지도력이 뒷받침되었을 때 가능한 일이다.

결국 국제적 공간에 무조건 긍정적 기대를 거는 것도, 지역적(일국적) 투쟁만을 능사로 생각하고 이를 방기하는 것도 모두 잘못된 일일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제는 개별 사업장의 단협조차도 IMF의 프로그램과 연관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OECD 내에서 밀실협상으로 이루어지던 다자간투자협정(MAI)의 예정된 진행일정을 파탄시킨 가장 큰 요인이, 어떤 활동가가 협상문서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각국에서 저항 행동들이 촉발된 것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고리들이 갖는 의의와 가능성들을 활용해야 함은 당연하다.

이는 아주 단순히, 시야를 넓히고 경험을 창출하자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제기가 다시 필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그것이 의식적 작업이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뭉크는 민족주의와 맑스주의 애증관계를 일별하면서 맑스주의 자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은 해석을 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항헤게모니의 역사적 블록을 형성하는 과정 속에서, '국제주의' 역시도 그 중요한 하나로 '고안'되고 교육되어야하는 전통이라는 것이다. 태극기를 흔들어대며 경제위기를 이겨내자는 민족주의 대신, 다른 나라 민중들의 투쟁에 박수를 보내고 우리나라 투쟁의 국제적 의의에 자부심을 갖는 가치관과 경험으로서의 국제주의가 일상화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당장은 이러한 것이 새로운 '인터내셔널' 건설을 운위하기보다 앞서야할 실질적인 작업일 것이다.


처음에 실린 피터 워터만의 글, [1848년의 국제주의에서 1998년을 위한 국제주의로]는 맑스의 두 저작 {공산주의당 선언}과 {독일 이데올로기}를 통해 당대 국제주의의 내용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계급과 운동의 성격 변화 등, 이후 역사가 가져온 조건들의 변화는 이러한 내용의 적실성도 변화시켰다. 그렇다면 그러한 조건들에 기반한 새로운 방향이 타진되어야 한다. 워터만이 보기에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두가지이다.

낡은 관념의 깃발을 고수하는 측에 홉스봄이 있고, 이질성 증대라는 현상들을 적극적으로 인정하면서 국제주의의 가능성을 추구하는 측에 E. P. 톰슨이 있다. 워터만은 작년 서울 국제노동미디어 행사에도 참여하여 적극 의견을 피력한 바 있었다. 그리고 이 글은 {공산주의당 선언} 150년 기념 파리 국제학술대회에도 기고되었다고 전해진다.

지구화라는 현상이 가져온 중요한 논점 중 하나는 계급투쟁의 전장이 과연 변화했는가 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실린 글에서 엘렌 우드는 많은 논자들이 주장하는 국민국가의 소멸이나 생산의 세계화 정도는 대개 과장이며 투쟁은 여전히 일국 차원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국경을 뛰어넘은 최근의 노동운동의 연대 사례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일까. 이에 대해 우드는 그러한 연대투쟁을 통합하는 원리는 단지 초국적기업에 대한 착취뿐만 아니라, 자본축적을 지속하는데 있어 특정 국민국가들이 행하는 '적극적'인 역할이었다고 지적한다. 요컨대 지구화는 오히려 국민국가를 더욱 가시적인 투쟁의 타겟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마치 IMF에 대한 재협상이나 반대투쟁은 신자유주의의 (수동적이기는커녕) 적극적이고 능동적 행위자인 국가 정책에 대한 투쟁과 분리될 수 없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이러한 논의는 이후의 파니치의 글에서 더욱 포괄적으로 전개된다. 파니치는 지구화와 민족국가를 둘러싼 그간의 이론적 논쟁을 광범하게 검토한 후, 민족국가의 기능이 어떻게 (소멸이 아니라) 변화했는가를 논의한다. 특히 데이빗 헬드 식의 '지구적 시민사회론'이나 좌파 사이에 널리 퍼져있는 '진보적 경쟁력 강화론'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이 눈에 띈다.

다니엘 벤사이드의 글은 국내에도 상당히 알려진 사파티스타 부사령관 마르코스의 글 [제 4차 세계대전이 시작됐다]에 대한 논평이다. 사파티스타가 제기한 문제의 급진성이나 조직방식의 새로움은 국제적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실제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인권을 옹호하는 국제회합"으로의 조직화를 이루어내기도 했다. 벤사이드는 이를 단순히 찬미하거나 폄하하지 않고, 좌파의 새로운 국제주의의 일부로 자리매김될 수 있도록 적극적 해석을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논평 이상의 독자적 함의를 담고 있는 글이다. 보편적 '국민의 재건설'이나 권력을 장악하지 않는 것의 의미, 그리고 진지전과 직접공격에 대한 해석은 그람시를 급진적으로 전유한 것으로 생각된다.

끝으로 최형익씨의 글은 8월 중순 서울대에서 개최되었던 제 6회 청년학생한마당의 국제연대 관련 토론회에서 발표되었던 것이다. 그간의 국내 국제연대 운동의 문제점들을 살펴보고, 예컨대 민주노총의 5대 요구안 등을 매개로한 공세적인 전망을 갖는 국제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무엇보다도 '현실적인' 논의이다.

 

● 관련해서 읽기


 
[내려받기]
1848년의 국제주의에서 1998년의 국제주의로 . . . 피터 워터만
국가, 노동, 그리고 계급투쟁 . . . 엘렌 메익신즈 우드
신자유주의의 깨어진 거울 . . . 다니엘 벤사이드
지구화와 국가 . . . 레오 파니치
신자유주의에 맞선 국제연대투쟁을 위하여 . . . 최형익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