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언 150년 이후 Communist Manifesto 150 years later  카피레프트모임 편역 ( 이후)


<공산주의당 선언> 150주년 기념 파리국제학술대회의 기고논문 선집

차례

  


필자들


주최자 서문

 서문 : 한국의 독자들에게

'쟁취할 세계'를 위하여
<공산주의당 선언> 150주년 기념 파리국제학술대회에 대하여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주의당 선언}(이하 {선언}) 발간 150주년을 맞이하여 1998년 5월 13일부터 16일까지 파리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의 참가자들은 그 누구나, 지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하나의 커다란 사건을 체험하고 있다는 데 공감하였다. 이미 수년 전에 서방세계의 지도자들은 '역사의 종말'을 공언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섣부르게, 소련연방의 몰락을 '이기적 타산이라는 차디찬 얼음물' 속에 세계를 익사시키는 거만한 자본주의의 최종 승리라고 혼동했던 것이다.

{선언}의 아름다운 문구들은 충격적인 현실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 세기를 향해가는 20세기 말의 세계 도처에서, 인류의 향상, 존엄, 인권, 정의, 해방에 대하여 걱정하고 생각하는 집단들이 가능한 전망에 대해서, 해방에 대한 기획의 내용에 대해서 서로 질문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를 통해서 좌우되는 세계화의 폐해 앞에서 저항의 의지가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의지는 수단의 황폐화를 통제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2천년대의 새로운 도전에 진보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이 되었다.

이것이 파리국제학술대회가 성공하게 된 근본적 이유이다. 각기 다른 65개국의 진보주의 진영에서 온 수천의 참가자들은, 다른 모든 문제들의 기초가 되는 다음 두 가지의 문제를 중심으로 주최측이 조직한 모임에서 답변을 나누었다.

자본주의에 대안은 있는가? 어떠한 인간 해방인가?

<맑스의 공간 Espaces Marx>이라는 협의체와 연관된 주최측은 각각 개인에 따라 재조직되었다. 연구자이든 좌파 혹은 극좌파의 정치 책임자이든,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여 이번 프로젝트를 전적으로 책임지게 된 것이다. 자신의 친구들을 위해서, 노동의 연대를 위해서, 전세계의 투쟁과 희망의 동지들을 위해서. 이런 다양한 연대 조직들이 서로 교차함으로써, 미국에서부터 브라질까지, 이스라엘에서 인도까지, 일본에서 호주까지 수백 명의 '후원자들'이 이번 프로젝트 주위로 모일 수 있었다. 그것은 이 세기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인류의 발전 속에서 공산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적 반성을 가한다는 큰 열망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를 후원하고 그 성공을 가능케 했던 이 모든 개인들은 각자의 동기뿐만 아니라 행로에 있어서도 다양했다. 대학 수준의 연구 또는 사회적 참여와 정치적 참여. 그리고 노동자 및 노동조합 운동, 생태주의 운동, 해방신학 운동 등의 문제들에 관한 공산주의적이고 사회주의적이거나 사회민주주의적인 경향들.

세기의 경험을 통해 우리 각자는 비극적 상황과 실패 앞에서 겸손해지게 된다. 그러나 세계의 참상은 거대 금융조작자들의 헤게모니에 사상으로나 행동으로 대항하기 위해 필수불가결한 창조적 노력의 열망을 고무시킨다. 왜냐하면 이젠 누구도 더 이상 미래가 내 손 안에 있다고 거드름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선언}의 출간 150년이 지나서, 1914년과 1917년의 커다란 분열 이후 처음으로 해방 운동의 한 세기에 걸친 역사 속에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뿌리를 내린 모든 사상의 조류들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전진하기 위해서, 어떠한 배제나 배척없이, 모두가 각자의 분석과 각자의 비판적 생각 및 목적들을 만나게 할 계획을 세웠다.

이들의 '만남'이 당연했던 것은 아니다. 그토록 많은 분열과 증오 혹은 멸시가 있은 뒤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만남을 통해 우리는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자극, 풍부성, 그리고 열정을 볼 수 있었다. 우선 전세계에서 발송된 3백15개의 기고문들을 통해, 5대륙에서 현재 진행 중인 연구와 작업들을 예외적으로 개괄할 수 있었다. 이 기고문들은 12권의 책자로 묶일 예정이며, 일부는 이미 인터넷에 배포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어디서나 민중들의 투쟁과 '공산주의라는 유령'을 끝장 냈다고 조금은 성급히 생각했던 자본주의의 헤게모니적인 힘에 대항하는 거대한 저항의지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공산주의'의 문제에 대한 다각적인 시각을 통해 미래의 기준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공동 회람의 자극 효과 덕분에, 이 모든 텍스트들이 실제 회의를 위한 중요한 첫 계기가 되었다.

두번째 계기는 5월 13일부터 16일 사이에 봄날 파리의 열기 속에서였다. 그것은 의사교환과 토론의 순간이었으며, 말하자면, 직접적 접촉의 순간이었다. 여러 사상들의 새로운 협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넓은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접촉. 모두가 각자의 지식, 경험, 그리고 사회적 혹은 정치적 책임에 부합하는 자원을 가지고 다른 이들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다. 다른 이들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우리를 풍부히 하는 것이 또 있을까? 오늘날 정의, 연대의식, 그리고 인간해방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쟁취하기 위해서 그 전제가 될 이론적이고 정치적인 계발의 노력에 새로운 활력을 부여하고자 한다면, 이는 정언명령이다. 왜냐하면 현 시대의 새로운 도전 과제들에 대응하는 데 유의미한 대안적 기획의 영역에서, 그리고 오늘날의 자본주의의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서 맑스와 엥겔스의 역사적 기여에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맑스 또는 {선언}을 준거로 삼는 것은, 그것이 촉매로 작용하여 지배, 착취, 인간과 민중의 종속에 대항하는 싸움 속에서 새로운 해방을 향한 진보를 위해, 창조적 노력들의 역사적 영향력들을 다시 열어젖히는 것이다.

생성되는 모든 움직임들은 고유한 요구들을 갖고 있다. 준비 과정에서 이루어진 접촉의 망들은 파리에서 "현존 사회 질서를 대체하는 사회적, 전투적 경험들에 의한 비판적 기여들뿐만 아니라 모든 혁신적 사상에 과감히 열려 있는" 노동과 토론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주었다. 바로 <맑스의 공간>의 헌장에 나온 이 문구, 이러한 태도는 전적인 책임을 지면서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는 개인들로 이루어진 이 단체를 활기있게 만들었다. 회의는 이제 올 봄 회합의 후원자들과 참석자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국제적 맑스의 공간 Espaces Marx Internationale>의 네트워크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 세기말의 도전들에 맞서 현하의 과제들이 빠질 수 없다. 파리국제학술대회의 주제들은 이 저작의 여러 영역에 관해 다루어졌다. {선언}의 150주년 기념회의가 성공함으로써 {선언}을 다시 바라보게 되었음이 분명하다. 물론 150년이나 된 이 저작이 이 시대의 젊은 세대가 해결해야 할 문제들에 명백한 대답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사회가 야만 사회로 후퇴한다는 걱정스러운 가능성에 맞서서 하나의 해방 사회를 창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그것은 우리 시대의 사회적 주체들 전체가 응답해야 할 문제이다. {선언}을 다시 한번 읽음으로 해서 역사의 숙명론자로 자처하는 자들을 거부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게 되었다. 이미 산업혁명 시기에 시작된 자본주의의 엄청한 발전은 오늘날 맹목적이며 대량적으로 변했다. 맑스는 대단히 힘주어, 그리고 아주 충격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 세계 시장의 미래와 그 원인들에 대해 강조했다. 그것은 역사의 운동 속에서 민중을 형성하는 보다 많은 개인들이 노동의 세계에서, 착취와 지배에 개입할 수 있도록 고취하는 대안적 기획을 형성하려는 사람들의 책임성에 호소하는 것이다.

인류 발전의 역사를 추적하는 이들에게는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행해졌던 비극들을 비판적으로 조사해야 한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정치적 명령이며, 이는 역사를 변화시키고 명확히 하려는 노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선 선결되어야 할 중요한 사항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는 모든 생각들을 명확히 비판하는 것이다. 변화의 주체인 남성들과 여성들 자신이 책임성을 갖지 않는 한, 해방은 있을 수 없다. 그리하여 모든 사회 생활 영역에서 모든 층위의 권력들에 대한 새로운 민주주의적 개입이라는 창조적 발전이 없어서는 안된다. 해방이라는 공산주의의 이상은 공산주의[라는 이름의 체제]가 전체주의적 체제의 국가였다는 이유 때문에 그 반대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이러한 역행을 이해하는 것은 이 세기의 진보 투쟁과 공산주의의 이상, 바로 그것 속에서 이루어진 인류의 특별한 유산에 대한 전유와 계승의 조건들이다.

왜 {선언}은 '공산주의'의 것인가? 1888년에 엥겔스는 1848년 텍스트에 붙이는 서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러한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의 대답은 간결하면서도 충격적이다. "1847년에 사회주의자들이라고 하면……잡다한 졸서들을 통해서 자본과 이윤에 어떠한 위험도 주지 않고 사회적 폐해들을 제거하겠노라고 약속하는 잡다하기 그지없는 사회적 돌팔이 의사들을 의미했다……노동자 중에서 단순한 정치적 변혁들의 불충분함을 깨닫고 사회의 총체적 개조의 필요성을 요구했던 바로 그러한 부분은 그 당시 자신을 공산주의라고 불렀다……두 명칭들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텍스트의 역사적 발자취를 간단히 살펴보는 것은 '다가올' 미래를 당당하게 비판하면서 상상력을 가지고 접근하게 해준다. 많은 격변과 패배의 20세기 문턱에서, {선언}이 발간된 후 50년이 지나 한창 발전 중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노동자들의 투쟁과 위엄, 희망이 증대되고 있다고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었다.

당시는 조레스(Jaur s)와 게드(Guesde), 레닌, 카우츠키, 로자 룩셈부르크와 그 외의 수많은 이들이 방대한 이론적 정치적 토론을 벌이던 시대였다. 레닌은 필수적인 적응과 마찬가지로 진화에도, 그리고 가능한 이니셔티브의 획득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며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맑스주의의 교조적 경직화의 위험성에 제한을 가하면서도, 맑스주의를 '당 이론'의 기본적인 원리 체계로 삼았다. 1914∼1918년의 전쟁이 가져다준 끔찍한 경험, 당대의 사회민주주의의 몰락, 그리고 10월 혁명을 통한 맑스주의의 볼세비키적 관념은, 혁명과 그 안내자로서의 공산당의 과학이 되어 세계적인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스탈린에 의한 교리문답 {레닌주의의 제 문제}는 이내 국가의 억압이라는 도그마로 공산주의의 해방의 열망을 왜곡시키는 것에 대한 이론적인 경종이 되었다. {선언}의 1백주년이 되는 1948년은 스탈린주의의 절정과 전체주의의 퇴락으로 기록된다. 그리고 바로 '자유 세계'의 이름으로, 사회민주주의는 맑스에 의지하기를 그만두고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싸움을 포기하게 되었다.

아주 가깝지만 이미 먼 이야기가 된 이러한 역사는 집단적인 기억 속에 매우 상징적으로 살아 있다. 아직 20세기 동안 공산주의의 이름으로 일어났던 사건을 이해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하면 {선언}의 그 처음 동력을 다시 되살릴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금세기의 해방 투쟁에 공산주의가 기여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역사의 실패를 비판적으로 해명하기 위한 조건이다. 좌파의 여러 경향들과 오늘날의 진보운동들을 만들어내었던 상징들, 동기들, 문화들이 그들의 모순이나 탐구 혹은 실패 속에까지 들어가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도전들이 많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결코 지금처럼 역사의 발전 속도가 빠른 적은 없었다. 맑스의 시대는 산업혁명의 시대이자 공작기계의 시대였다. 오늘날은 완전히 새로운 기계들이 인간의 지적 능력과 결합한다. '정보혁명' 속에서 자라나는 새로운 가능성들이 인간의 노동을 일회용의,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고자 하는 착취와 지배 관계라는 장애물을 만난다. 일국에서든 세계적으로든 오늘날 사회의 발전하는 위기 한 가운데에 이러한 모순이 있다. 사회는 누구나 심각한 피해와 위험성을 느낄 수 있는 균열들을 생산하고 있다. 노동을 약화시키고 대량실업에 의존하는 방식은 새로운 [대안적] 사회의 기획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드러낸다. 각인의 자유롭고 전면적인 발전, 즉 조직, 정보, 그리고 개입 능력의 발전이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구성원 모두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된다. 이것은 지배적인 경제 논리에 대항하여 인류공동체의 이익과 나란히 연대, 연합과 협동, 공유 등의 윤리적 가치를 증진시키는 문제이다. 이 시대의 새로운 도전들에 대응하여 스스로를 구체화하면서 공산주의의 목적은 현실화되고 힘을 얻는다.

만일 21세기의 문턱에서 {선언}을 환기시키는 것이 이처럼 반향을 일으킨다면, 그것은 자본주의를 대체하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새로운 질문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다양성을 존중하는 가운데 지식과 정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비판적 탐구와 응답의 창조적 능력들이 '수렴 지점'으로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 {선언}을 이렇게 혁명적 관계 속에 자리매김함으로써 그 특별한 '추동력'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모든 지배 관계에 대항하여 각 개인의 존엄성과 권리를 확고히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배 권력을 제어하기 위한 출발점이다. '하나'의 권력이 아닌 다수의 권력, 이미 경험들을 통해 우리는 이를 알고 있다. 그것은 단지 혁명의 과정 속에서 가능성의 해방의 전진을 보장하는 국가의 권력 기구들의 장악만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새로운 개입의 공간을 장악하기 위해, 사회운동과 정치적 구조 사이에 넓혀진 시민적 책임성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문제이다. [예컨대] 프랑스의 '복수 좌파 gauche plurielle'라는 개념은 새롭고 자극적인 방법으로 접근의 다양성과 필수적 단결의 결합이라는 명제를 연결시킨다.

어느 누구도 앞으로 건설될 미래라는 길의 지도를 소유할 수는 없다. '150년 이후' 지배적인 사회질서를 비판하는 새로운 길들을 함께 개척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정복해야 할 보편성은 어떠한 것인가? 그리고 우리가 '쟁취할 세계'는 어떠한 것인가? 그런 제목으로써, 소르본느의 대극장에서 지난 5월 16일 토요일에 끝난 회합에서 가진 두 차례의 원탁회의는, 열려진 역사의 창문을 향해 내던질 도전과 필수적인 전진의 방향을 구체화시켰다.

150주년의 기념을 계기로 한 이 성공적인 만남은,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하나의 정언명령을 구체화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하겠다. 즉 정신노동, 이론작업 그리고 각 개인의 해방과 인간해방을 가능케하는 새로운 것들을 표현할 수 있는 세력들과 개인들의 활력있는 개입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맑스는 그 시대에 칙령으로 사회를 규격화하고 도덕화하는 척하는 교조론자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계급사회를 초월할 수 있는 역사적 가능성, 즉 공산주의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 속에서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의 가장 선구적이며 생생한 이론은 이후 풍부히 계발되지 않은 채, 버려지고 파괴되고 혹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어 왔다.

어느 것도 인간해방이라는 목표를 자신의 전유물로 자임할 수 없다. 인간해방은 미래의 가정들과 오늘날 문명의 위급성 사이에서 생성된 열망들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대면시키지 않고서는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회 관계들의 총체적인 혁명이라 불리는 정보혁명의 가속화된 발전 과정에서, 그것은 좀더 많은 이들의 이니셔티브를 자유롭게 하는 문제이다. 또한 그것은 재산과 지식, 권력을 새롭게 분배하기 위함이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 이어지는 결과들은 이처럼 자본주의를 효과적으로 넘어서려는 문제에 동참하려는 활발한 노력들을 '선언[표현]'하게 될 것이다. {선언} 이후 150년이 지난 지금, 이것은 인간해방을 지향하는 세력들의 새로운 만남을 위하여 쇄신하며 작업할 문제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또 한 번의 세기의 끝에서, 우리가 함께 바라는 보다 인간성으로 풍부한 세계로의, 새로운 연대의 네트워크 안에서의 토론 및 사상과 행동의 교환의 장으로서, 이 모임이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1998년 5월 21일

프랑세뜨 라자르
 

 


편역자 서문

갇혀진 이론들을 소통시키고 대중화시키기


맑스주의가 세계를 변혁하기를 중단한 20세기 말, 맑스주의는 해석의 대상이 되어왔다. 지난 5월 13일부터 16일까지 파리에서 열렸던, <{공산주의당 선언} 150주년 파리국제학술대회>에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는 건 대충 이런 이유에서이다. 과연 맑스주의는 다시 세계를 변혁하고자 할 것인가? 또 다시 자신을 해석하고 말 것인가? 질문은 이미 던져졌고, 그 성패 여부를 확인하려면 좀더 기다려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 95년 <제1회 국제 맑스 대회 Congr s Marx International Ⅰ> ― 이 대회의 성과물은 총 6권 분량의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며, 현재 4권의 책이 발간된 상태이다. 한편, 이 대회를 개최했던 프랑스의 유력 좌파 잡지인 {맑스의 현존 Actuel Marx}은 오는 9월 <제2회 국제 맑스 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한다 ― 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던 프랑스 좌파 지식인들과 활동가들이, <맑스의 공간 Espaces Marx>이라는 단체의 발인에 호응하면서 시작된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그 규모에 있어서 사상 최대의 국제학술대회라고 할 수 있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사람은 대략 65개국 2천여 명이며, 프랑스에 근거를 둔 준비국(preparation bureau)에 제출한 기고문만 해도 약 3백15개에 육박했다. 또한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준비하기 위하여, 참가를 희망한 단체들과 개인들을 중심으로 각국마다 준비위원회가 건설되었으며, 제반 분과학문의 전공학자들이 자신들의 지적 토대 위에서 {공산주의당 선언}(이하 {선언})의 재독해를 감행했다. 한편, 프랑스 준비국의 기획위원장인 프랑세뜨 라자르(Francette Lazard)에 따르면, 이번 파리국제학술대회는 이번 회합의 성격에 가장 잘 부합하는 논문들을 중심으로 총 24개의 워크숍(workshop)이 열렸으며, 각국 준비위원회의 의견을 모아 4개의 주제에 걸쳐 총 4회의 총회(plenary session)을 준비했다고 한다.

이번 국제학술대회의 전체 기조는 "자본주의에 대안은 있는가?"와 "어떠한 인간 해방인가?"였는데, 이 전체 기조에 맞춰 세분화된 각 총회의 주제를 일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번째 총회의 주제는 "공산주의, 역사를 배회하는 유령 : 세계적·역사적 맥락, 당대와 오늘날의 {선언}"이었다. 이 총회에 관련된 워크숍 주제는 다음과 같다. ① {선언}, 그 세계적·역사적 맥락, ② 맑스 저작 내에서 {선언}이 차지하는 의미와 위치, ③ {선언}의 독해, 그리고 노동운동의 미래, ④ 1917년∼1989년, 동구 사회, 행동 중인 {선언}? ⑤ 1968년의 세계, 그후 30년 : 현재의 지배상태에 대한 저항. 첫번째 총회의 주제는 당대의 {선언}과 그 역사, 혹은 {선언}의 충격적 파장과 영향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에 초점을 맞춘 것인데, 이 총회에서는 {선언}에 대한 다양한 해석뿐만 아니라, {선언} 그 자체가 활발히 논의되었다. 특히, 이 주제의 총기획자인 조르쥬 라비카(Georges Labica)는 {선언}에 대한 간략한 연구 노트를 발표했는데, 그는 "엥겔스가 말한대로, {선언}은 그 자체 내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문서이다"라고 말하며, {선언}의 이전과 이후의 모든 텍스트들을 면밀히 검토하지 않고서는 그 풍부한 함의들을 끌어낼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번째 총회의 주제는 "이기적 계산이라는 차가운 물 : {선언} 시기의 사회 현실에서 현 세계의 쟁점까지"였는데, 특히 이 총회에서는 생산력의 전화, 노동(혹은 작업)의 미래, 계급 관계 ― 착취의 관계와 지배의 관계, 세계화 ― 의 진화에 관련된 문제들이 논의되었다. 두번째 총회와 관련해서는 총 7회의 워크숍이 열렸다. ①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 150년 이후, 오늘날 세계에서 계급관계란 무엇인가? ② 산업혁명에서 동시대의 테크놀로지 변환까지 : 사회적 노동분업의 미래, ③ 실업을 극복하기 : 직업 보장과 직업 훈련이 전부인가? ④ 도시 문제, ⑤ 세계화란 무엇인가? : 자본의 금융화와 '경제전쟁' 혹은 인간 협력의 새로운 유형? ⑥ 민족에 미래는 있는가? ⑦ 사회 변혁과 지속적인 개발 : 어떠한 인간/자연 관계인가?

{선언}의 배후에 놓인 이론적 사고와 그 미래, 혹은 그 사고를 따라, 이론과 유토피아, 그리고 이행 전략에 관련된 실제적 프로젝트를 절합시키는 해방의 프로젝트에 대해 오늘날 어떻게 사고할 수 있는가 등을 다룬 세번째 총회의 주제는 "역사적 운동에 대한 총체적인 이론적 이해"였는데, 여기에 관련해서는 모두 6회의 워크숍이 조직되었다. ① 현 상태의 비판에서 미래를 향한 목적까지, ② 역사는 이해가능한가? ③ 지배, 권력, 착취 : 사회적 논리, 이데올로기 그리고 인간 주체성, ④ 공산주의와 개별성 : 개인과 전체의 자유로운 발전, ⑤ 경제학 : 규제, 그리고/혹은 민주적 개입의 영역? ⑥ 진보를 문제삼기.

네번째 총회의 주제는 "쟁취할 세계 : 어떤 '혁명'을 위한 어떤 '담지자'인가?"로서, 여러 참가자들이 노동자 계급의 이름으로 창출되어왔던 민주주의, 정치 그리고 정당의 미래에 대한 문제들을 다루었다. ① 민주주의, 혁명적 쟁점, ② 어떤 국제주의인가? ③ 국가는 '포획'될 수 있는가? : 개혁, 혁명, 과정, ④ 소유의 문제 : 소유권, 권력, 경영, ⑤ 여성해방과 공산주의 프로젝트 ⑥ {선언}의 '공산주의당'에서 오늘날의 복합성까지 : 노동운동, 사회운동, 어떤 형태의 정치조직인가? 등이 네번째 총회와 관련된 워크숍들이었다.

본서에 실린 기고문들은 위의 총회 주제들과는 무관하게 옮긴이에 의해 임의로 배열됐는데, 대략 본서의 제1부와 제2부 그리고 제3부가 각각 처음의 세 총회에서 다뤄진 내용들과 유사하다고 보면 될 것이다. 파리국제학술대회에서 논의되었던 얘기들은 본문을 읽어보면 자세히 알게 될테니, 행사 소개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관심있는 분들은 <맑스의 공간> 홈페이지 ― http://www.iaf.regards.fr/EspMarx/ ― 를 직접 찾아가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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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스가 죽은 지 2년 후인 1885년, 엥겔스는 {쾰른 신문} 런던 통신원의 일화 하나를 소개하면서 맑스를 번역하는 작업의 어려움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엥겔스가 맑스 저작의 번역자에게 요구했던 덕목들(일상적인 표현과 방언의 어법에 대한 이해부터 시작해서, 적절한 어휘 선택과 전문적 용어에 대한 적절한 역어 선택에 이르기까지) 중 우리가 가진 게 얼마나 적었던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가 번역하기로 작정한 건 맑스가 아니라, 외국의 여러 맑스주의 이론가들과 실천가들의 글들이었다(또한, 엥겔스가 말한 덕목들이 반드시 맑스[주의자] 저작들의 번역자에게만 요구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한때 우리나라에 '운동권 사투리'라는 표현이 회자되었듯이, 원래 맑스주의자들의 말 씀씀이가 난해하기로(혹은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기 때문에 사정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누구 말마따나, "당근이지," "김대중 장난 아닌데" 식의 문장을 우리말 배우는 외국 학생한테 국어사전 주고서 번역하라고 한들, 그 번역이 제대로 될 리가 없을 그런 상황이었던 것이다.

느닷없이 길게 이런 얘기를 꺼내는 건, 무엇보다도 국내 여러 학자들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우리가 이번 국제학술대회의 개최 소식을 들은 건 지난 1월이었다. 우리는, 학생들인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 국내 진보 진영의 날고 긴다는 학자들도 분명 알테고, 그러니 조만간 번역본 소식이 나올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3월이 다 끝나갈 때에도 전혀 그런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혹시 이 소식을 못 들은 게 아닐까?,"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 번역에 응하는 출판사가 없나?"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결국에는 우리가 번역하기로 맘을 먹게 되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지난 두 달간 열심히 예의 그 "게를 잡는" 짓을 하고 말았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는 이번 국제학술대회에서 벌어진 여러 논의들이 우리의 실천에 얼마만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는 지금이 세상을 완전하게 설명해내는 새로운 이론을 모세가 십계를 얻듯이 받아들이거나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지금 시기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갇혀진 이론들을, 부분적인 연구 성과들을 끌어내고 소통시키고 대중화시키는 것, 그럼으로써 추상적 논의들을 상대화시키고 자극시키는 것이다. 이번 번역 작업의 의의를 두라면 우리는 기꺼이 이 사실을 당당히 들이내밀 것이다. 지식이 개인의 전유물이 된 것은 계급이나 민족이 그러한 것처럼 '역사적'인 현상이다. 이론이 연구자들의 전유물이 된 것 역시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이후 등장한, 그리고 서구에서는 '서구 맑스주의'로 지칭되기도 하는 '역사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이는 당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타파되어야 할 구조이다.

우리의 괜한 치기 때문에 느닷없이 '게를 잡는' 일에 뛰어든 여러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일만 남은 것 같다. 무엇보다도 불어본을 번역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권효정(서울대 경제학과) 씨와 이봉석(중앙대 대학원 불문학과 석사 과정) 씨에게 감사드린다. 정보연대 SING의 신배현경 씨는 그 누구보다도 우리에게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특별히 감사드린다. 그리고 요즘과 같은 불황의 시대에, 선뜻 이 책의 출간에 응해주신 도서출판 이후의 대표 이일규 님에게도 감사드린다. 현희경 씨는 거친 원고들을 정성스레 다듬느라 밤샘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현희경 씨에게도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이번 번역작업을 끝으로 '변혁'과 '현실'의 접점을 찾겠다며 영국으로 공부 떠나는 우리의 동료 김유진의 건투를 비는 것도 빠뜨릴 수 없겠다.

 

1998년 6월 25일

옮긴이 카피레프트모임

 


서평

맑스주의의 '리메이크'를 위한 요청들
* 서울대앞 서점 "그날이 오면"의 소식지 <그날에서 책읽기> 4호에 실린 글입니다.
 

자신들이 펴낸 책을 가지고 서평을 써대는 우스운 일도 없으리라. 그러나 책에서 담지 못했던 몇가지 뒷얘기들을 전달할 수 있는 지면을 가질 기회라면 기꺼이 응할만한 일이다.

물론, 월드컵의 반에 반만큼의 주목도 받기 어려웠지만, 그 보다 한달 전 파리에서는 {공산당선언}의 출간 15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제법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5월 13일부터 나흘간 열린 이 대회의 주최측은 프랑스 공산당의 부설 연구소쯤되는 "Espaces Marx(맑스의 공간)"라는 이름의 단체였다. 이미 몇 달 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백여개의 발표문이 인터넷으로 모아졌고, 현장에는 천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자본주의에 대안은 있는가", 그리고 "어떤 인간해방인가"라는 큰 주제를 가지고 맑스의 이 유명한 소책자을 둘러싼 의견을 나누었다. 이 대회 말고도 많은 '기념' 행사들이 각국에서 개최되었지만, 그 규모와 참여자의 범위를 볼 때, 이만한 학술대회도 흔치 않을 듯하다(자세한 스케치가 {길} 7월호에 이가진 기자의 글로 실려있다).

확실히 {선언}은 다시 읽히고 있는 것 같다. Verso 출판사는 에릭 홉스봄의 서문을 붙여 펄럭이는 붉은 깃발이 선명한 표지의 {선언}을 새로 펴냈다. <Monthly Review>를 발행하는 Merlin Press도 폴 스위지가 서문을 쓰고 엘렌 메익신즈 우드의 논문을 보태어 {선언}의 신판을 냈다. 한편 북미의 <Socialist Register> 이번 호는 "오늘날의 선언(The Communist Manifesto Now)"을 주제로 하여 데이빗 하비 등의 논문을 싣고 있다. 이 책, {선언 150년 이후}에 실린 레이즈/패니치, 샘 긴딘 등의 글 역시 이 <Socialist Register>에도 수록되었던 원고들이다.

이 책에 모아진 20여편의 글들에는 어쩌면 맑스주의의 '새로운 전화(轉化)'나 발본적 변신 따위의 신기한 이야기는 없다. 예를 들어 리처드 레빈즈는 현실사회주의의 실패를 식물의 메타포를 써서 설명한다. 즉, "사탕수수 녹병은 사탕수수 자체가 아니라 사탕수수가 걸리는 병이다. 그리나 동시에, 그것은 사탕수수의 병이지 토마토의 병은 아니다." 결국 사회주의 자체와 사회주의의 이름으로 저질러졌던 오류들을 분별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레빈즈 역시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운동이 그러한 왜곡에 왜 그렇게 취약한지를 깨달아야" 함을 강조한다.

이 책 속에는 한편으로 보다 '교조적'이라고 느껴지는 주장들로부터 다른 한편으로 포스트맑스주의적 사고의 도입을 주장하는 칼라리/루치오의 논의까지 다양한 목소리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카갈리츠키가 러시아에서 젊은 가수들이 옛 소비에트의 노래들을 다시 부른 1996년 히트음반 "가장 중요한 것에 관한 옛 노래들"을 예로 드는 것처럼, 이 책의 전체적인 목소리는 다름 아닌 맑스주의에 대한 '리메이크(remake)'의 요청일 것이다.

더욱 반가운 것은 단지 교수들과 학자들의 논의들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조직자나 대중교육가와 같은 다양한 현장의 육성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초국적 금융자본주의의 시대에 경제적 식민주의에 대항하는 길을 고민하는 제 3세계의 논의와 함께, 제국주의 억압국가 내의 노동자계급은 어떠한 행동을 취해야 하는가를 묻는 제 1세계의 목소리가 서로 만나는 것은 고무적인 경험임에 틀림없다. 이 책에 실린 논문의 목록과 차례는 편역자가 임의대로 선정한 것이지만, 대체로 1부에는 총론격의 글을, 2부와 3부, 4부에서는 각각 이론과 운동, 보완적 의제들을, 5부에는 결론에 해당하는 글들을 모았다. 부록으로 덧붙인 트로츠키의 "{선언} 90주년을 맞이하여"는 적어도 역사를 살아가는 자세를 배우기 위함이다. 현실 사회주의권에서 맑스주의의 경화(硬化)가 시작되고 서구맑스주의가 강단과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겨가던 때에, 그는 {선언}이 갖는 당대의 정치적 의미를 진지하게 짚어보고자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듯 {선언}은 다시 새로운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 이 책의 여러 논자들이 지적하듯, 이 소책자의 구절들이 그대로 완전히 타당하거나 모든 것을 포괄하지는 못하지만 그 중요한 부분은 여전히 빛나는 통찰로 남아있다.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는..." 부터 "...단결하라"까지 매 구절이 되울림을 갖지만, 예컨대 "모든 정체적(停滯的)인 것은 증발되어 버리고(All that is solid melts into the air), 모든 신성한 것은 모독당한다"라는 구절이 특히 그러할 것 같다. 마샬 버먼은 이 구절을 그의 책({현대성의 경험 - 견고한 모든 것은 대기 속에 녹아버린다}, 현대미학사)의 제목으로 따오면서, 맑스를 모더니티의 역동적 성격을 선취한 중요한 인물로 평가한 바 있다.

모든 단단한 것이 자취없이 녹아 없어지고. . . 그렇다. 애초에 자본주의의 눈부신 생산력의 발전과 그 변혁의 속도가 모든 낡은 것을 날려버렸듯이, 그리하여 포드주의 타협과 복지국가를 날려버리고 마침내 베를린장벽까지 날려버렸듯이, 이제는 이 땅에서 '시민사회'도 '중진자본주의'도 모두 자취없이 녹아 없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97년의 노동법 개악반대 총파업과 작년 연말 이후의 IMF의 구제금융 프로그램은 우리를 순식간에 국제적 운동의 맥락 속에, 그리고 {선언}의 맥락 속에 가져다 놓은 것인지도 모른다. 저승에서 불러낸 마귀의 힘을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마법사라는 맑스의 비유는, 이제 국경을 넘어 생산의 판로를 부단히 개척하다가 마침내 핫 머니들이 고삐를 뒤흔드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의 자본주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앨런 우즈가 이 책의 말미에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그리고 지구의 나머지 지역들에서도 역시!"라고 '선언'적으로 결론짓고 있는 것이 그리 눈에 거슬리지 않는 것도 그러한 정황 탓일 것이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맑스에게 미안한 일이지만, 이 편역작업이 그리 훌륭하지는 않다는 것 역시 변명처럼 덧붙여야 겠다. 시간에 쫓긴 탓도 있지만 당연히 그것은 언어능력과 주변 지식의 한계였다. 페미니즘을 다룬 글 3개가 한꺼번에 묶인 것 등도 다소 무리한 편집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세계가 주목하는 남한에서, 그에 부응하는 연구작업이 거의 전무하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의 작업을 강제했고 또한 재촉했다. 80년대에 일었던 맑스-레닌주의에 대한 '비상한' 붐과 활발한 출판/연구 활동과, 이후 분위기의 기이한 침잠은 이러한 지나가는 '껀수'를 통해서라도 다시 문제제기되어야만 하리라는 생각이다. 적어도 지금 {선언}을 환기한다는 것, 오역과 직역을 감수하더라도 그것은 필요한 일이기에 그렇다.

끝으로 {선언}은 원래 대중들을 위해 씌여진 팜플렛이라는 점을 상기하는 것이 긴요할 것이다. 레이즈와 패니치는 <독일노동자교육협회>의 벽보를 인용하면서 그들의 글을 맺고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의 지적 능력을 계발함으로써만 자유와 자기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저녁회의들은 교육에 바쳐진다. 첫 번째 날에는 영어를, 두번째 날에는 지리를. . . 여섯째 날에는 춤을, 그리고 일곱 번째 날에는 공산주의 정치를 가르친다"라고. 우리는 이를 다음과 같이 바꿔 볼 수 있으리라.

월요일엔 해방전후사를, 화요일엔 민중가요와 록을, 수요일엔 벽그림을, 목요일엔 김수영과 김남주의 시를. . .

 

박대련 (카피레프트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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