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에게 새로이 의미부여하기


조엘 코블



{공산주의당 선언}(이하 {이하 {선언}) 150주년은 우리로 하여금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나는 가능성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지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후자를 차분하게 논증할만한 인내력을 갖고 있지 않으며 이를 아주 독단적으로 이야기해야만 하겠다. 즉, 그것이 일어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자본주의 체제의 절망적인 위기담지적 성격, 자연에 대한 파괴적 영향, 그리고 인간의 필요를 도저히 충족시킬 수 없다는 사실 등을 감안한다면,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은 명백히 남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경향들에 대해서는 맑스의 명성에 의지할 필요도 없다. 자본에 대해 누가 무어라고 하든 상관없이 자본은 그런 식으로 작동할 것이다. 그러나 맑스는 우리에게 자본의 비인간적 운동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론과 통찰력을 제공해 주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이름은 널리 칭송되고 있는 것이다.

맑스가 자본을 극복하기 위한 적절한 안내를 제공하지 못했다고 이야기되기도 하며, 그로 인해 그의 이름은 오늘날 널리 비난받고 있기도 하다. 얼마간은 {선언}에서 밝혀진 기획이 그러한 안내를 제공해주는 듯이 보이기도 했다. {선언}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행동이 흥기하던 시기에 작성되었으며, 또한 이를 논제화하고 동시에 조직화하는 걸 도와주었다. 맑스의 정식이 정확해 보였던 1백 년 이상 동안, 선동 또는 혁명적 선동이 전개되었다. 그렇다, 주름들(wrinkles)이 존재했다. 자본의 붕괴는 너무 오래 걸렸고, 혁명의 가장 활발한 운동들은 (예측되었고 또한 필요성을 가졌던 가장 발전한 중심부에서보다는) '주변부'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핵심 지점은 아마도 거부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은 자신의 매장자들을 창출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본이 보다 멀리 나아갈수록, 그 최종적 몰락은 보다 현저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몰락한 것은 사회주의 운동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해방적 약속들을 실현하지 못했고, 내적으로 낡았으며, 압도적인 반(反)혁명의 압력에 굴복하여, 마침내 밀려오는 조수에 파묻히는 많은 모래성들처럼 무너져내렸다. 이에 못지 않게 곤란한 것은, 사회주의의 역사 속에서 이 국면의 일부를 이루었던 혁명적 열정이 지난 세기의 끝을 향하여 퇴행의 과정을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는 여러 특수한 예외들에도 불구하고, 결코 회복되지 못했다. 베른슈타인 식의 사민주의로의 후퇴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대의에 대한 배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는 또한 계급 의식이 지체된다는 현실적 인식에 근거한 것이기도 했다.

맑스가 이 대부분을 예견할 수 없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나는 그를 신성시하거나 악마화하려고 애쓰는 이들에게는 이것이 중요한 정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머지 우리에게 있어, 이는 단지 혁명적 사회주의의 창시자 역시 인간이었으며 특정 부분들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었다는 증거들이 될 뿐이다. 하지만 나는, 근본에 있어서, 맑스는 여전히 우리에게 사회주의 혁명의 가능성에 대하여 핵심적인 무언가를 이야기해준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는 맑스가 가지고 있던 가장 기본적인 특질로부터 비롯한다. 그것은 그가, 그 자신 젊은 시절에 적었듯이, 권력에 대해서만큼이나 그 자신의 가정들에 대해서도 두려움없는 또는 '무자비한' 비판정신을 소유하는, 발본적이고 일관된 비판적이고 변증법적인 사상가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비판적 능력은 그릇된 것을 지적하는 것 이상의 능력이다. 이는 또한 부정을 통한 변혁의 과정에의 참여이기도 한 것이다 ― 그리고 이것을 완전히 변증법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결국 '그릇된 것의 지적'은 기존의 상태에 대한 부정과, 보다 완전하게 실현된 상태의 출현에서의 한 순간(moment)일 뿐이다. 따라서 맑스를 '맑스주의자'로 만드는 것은 자기초월(self-transcending) 능력인 것이다. 그리고 맑스가 일관되게 변증법적이었기 때문에, 맑스주의의 다른 특성들은 이러한 자기초월적 특질과 내재적으로 부합하게 된다. 특히 인간 본성에 대한 전체적 시각은 이러한 부정과 자기초월의 동학 속에 엇물려 있다. 인간은 자기초월적 존재이다. 그리고 인간본성은 자기형성과 자기실현의 능력과 힘들 ― 물론, 이와 함께, 때로는 비극으로 때로는 희극으로, 그러한 요구들로 피조물에게 부과되는 위약함과 함께 ― 로 구성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혁명 과정은 이제 막 끝난 사회주의의 첫번째 시대에서 발생한 자본과 노동간의 만남과 같은 특정한 역사적 지형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혁명은 오히려 집합적이고 가장 완전한 문명적인 범위에서의 자기초월적 심급인 것이다. 혁명은 역사 속에서 인간 본성의 실현이다. 초창기의 사회주의는 초기 자본주의의 조건 속에서의 혁명에 대한 설명이었고, {선언}은 그러한 상황하에서 인간을 각성시키기 위한 요청이었다. 사고가 현실과 분리될 수 없듯이, 맑스의 생각과 실천은 한 전체의 다른 면들이었다. 맑스가 그 자신 중요한 역할을 했던 노동자 운동들을 기록하고 동원했던 것에서 보여지듯이, {선언}에 각인된 사상들은 이러한 통일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맑스는 그의 뛰어난 추상화를 통해, 노동자 운동들로부터 역사와 사회의 일반적 변형 법칙들을 이끌어냈다.

맑스에 의해 발전된 인간 본성에 대한 조망에서 볼 때, 형성되고 변형되는 자아는 결코 완결되지 않는 기획이다. 그것은 그 자체 내에서 머무르는 기획일 수도 없다. 자아는 사회적이지만 사회적인 것 이상이기도 하다. 자아는 그것이 비롯했고 또한 돌아가게 될, 우주 전체와의 끊임없는 신진대사(metabolic)의 상호작용 속에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아는 다른 인간들 및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형성되고 변형된다. 자연이 자의식을 만들었듯이, 인간성은 우주의 전체 흐름 속에서의 변형, 생산을 통해 수행되는 변형, 즉 자연의 의식적 대상화의 특히 역동적인 순간을 대표한다. 자연의 자아변형은 노동(변형적 활동으로서의)과 생산(변형의 전체 과정으로서의)이라는 중심 범주들로 주어진다. 만약 우리가 자아라는 유리한 고지에서 외부를 바라본다면, 우리는 인간의 필요와의 관계 속에서 노동이 변형시킨 자연의 총합으로서의 정치경제학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이를 바깥에서 안으로 바라본다면, 우리는 주어진 역사적 단계에서의 자아에 대한 영향들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로부터 혁명적 변형의 전망이 발전될 수 있다.

하지만 혁명의 효과적인 기관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는 어디에서 집합적 자아로 발생하게 되는가? 이를 혁명적 주체라고, 즉 인간의 변형적 힘들이 혁명적 목표로 합치되고 집중되는, 계급으로서 집합적으로 조직화된 일련의 배열들(dispostions)이라고 부르도록 하자. 혁명적 주체가 없다면 혁명도 있을 수 없다. 주체가 존재한다면 혁명은 가능해진다. 물론, 가능성이 결코 가치있는 결과를 보증해주지는 않는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결국, 혁명적 주체의 현존은 사회주의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닌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맑스주의가 제대로 이론화하지 않은 차원을 발견하게 된다. 객관적인 사회적 조건들과 그러한 조건들의 변형 사이에는 계급을 따라 형성되는 집합적 자아의 영역이 놓여 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는 이 영역을 간과하거나, 단지 경제적 과정의 내적 반영으로 환원하여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자아, 또는 우리가 여기서 사용하는 말로 주체는 객체로 함몰될 수 없으며, 특정한 내재적 내용을 갖는 것이다. 사물의 변증법적 성격은 인간 속의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세계들 간의 차이 위에 놓여 있다. 어느 것이 다른 어느 것으로 함몰된다면, 부정의 원칙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으며, 인간은 그 특수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서, 사회주의의 실패들을 보다 면밀히 살펴보도록 하자. 이는 이중의 모순으로 이해될 수 있다.

1) 자본주의 사회가 '발전'하면 할수록, 혁명적 주체의 출현은 더 멀어 보이는 것 같다.

2) 혁명적 주체들이 나타나곤 했던 그러한 '후진적' 상황들은 사회주의적 발전에 적절한 조건들을 제공하지 않는다.

혁명적 사회주의의 모든 부활은 이러한 이중의 딜레마와 맞닥뜨리고 이를 극복해야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단편적인 언급 이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맑스가 산업적 경험에 혁명화의 힘을 부여한 것은 오류였던 듯이 보인다. 그래서 그는 그 자신이 주의를 요청했던 모순, 즉 노동의 소외가 갖는 잠재력을 간과했다. {1844년 경제-철학 수고}에서 처음 언급되고, 이후 {자본}에서 명석한 세밀함으로 구체적으로 정초되었듯이, 맑스는 자본주의의 합리화된 생산이 신체를 착취하고 인간의 연대를 붕괴시키는 것 못지 않게, 어떻게 마음을 말라죽이는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맑스는, 자본주의적 생산은 또한 많은 수의 노동자들을 한데 모으고 그들에게 기계의 사용을 가르침으로써 급진적 잠재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그 계기들 간의 힘의 균형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모순을 정의했다. 하지만, 역사는 이 모순의 어떤 계기가 혁명적 주체의 발전에 있어 결정적이었는지를 보여주었다. 자본주의적 생산이 발전할수록 노동자들은 봉기에 나서지 않으며, 심지어는 집합적으로 생각하지도 않는 경향을 나타냈던 것이다. 문제는 단순한 착취 또는 '노동귀족'의 발전 따위가 아니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작업장에 도입된 합리화, 즉 비판적이거나 변형적인 이성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생산에 내재한 정신의 도구성과 억압의 내재화이다. 이와 함께 그것은 체제에 [취업] 서명을 했지만 어떤 대안의 일관된 전망을 갖지 못하고 풍토병적 불안정성에 직면하는 이들에 내재해 있는 체계적인 공포인 것이다.

이에 덧붙여서, 개인적·지역적 생활의 파편화, 공적 공간의 소멸, 매스미디어 산업에 의한 그러한 공간의 지적, 문화적 황폐화, 그리고 소비주의의 거대한 작동방식에 의해 전반적으로 포섭된 삶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현대 사회 내의 혁명적 주체의 소멸에서도 또는 상품물신성 논리의 전반적인 나르시시즘과 굴복으로의 대체에서도, 거의 아무런 수수께끼도 발견하지 못한다. 이러한 성향의 상실은 결정적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특수한 국가 후원의 억압에 선행하여 일어나며, 종종 억압이 불필요하도록 만들거나 그 영향력을 잠재화하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요약해보자. 자본하의 노동자들은 생산양식에 대한 저항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생산양식에 의해 더 많이 구성되어진다. 자본의 그렇듯 온전한 인격화들이 여러 외양으로의 부르조아지가 되지 않았더라도, 노동자들은 여전히 자본주의적 경제, 사회의 활동의 영향으로 인해 자신들의 급진적 잠재력을 뚜렷히 희석화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에서는 모두가 체제의 희생자이다. 그리고 소유적 개인주의, 관료적 도구주의 및 냉소적 절망의 황폐함을 벗어날 수 있는 이는 아주 드물다. 이 말은 지금 출현하고 있는 저항의 힘을 평가절하하는 것도, 이들이 다가오는 기간에 완전히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도 아니다. 이는 다만 분명한 사실, 즉 이러한 힘들은 오늘날 여전히 희망사항(adormant state)이라는 것의 재진술일 뿐이다. 이들은 '선진' 자본주의의 허무주의와 도덕적 절망에 대항하여 있는 힘을 다해 깜빡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은 단지 거시적 수준에서만이 아니라 관료적 합리화의 구조들과 소비주의적 욕망을 통해 일상 생활에 녹아 들어 횡행하는 것으로서, 맞서 싸우고 극복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자본은 주체의 수준에서 대안적 관념으로 대체되지 않으면 극복될 수 없다. 맑스와 엥겔스가 {선언}에서 언급하는 노동자들에서부터 그 이래로 일어났던 수많은 현실의 혁명들에 이르기까지, 자본에 대항하는 성공적인 반란 사례들의 가능성을 창출한 것은 이러한 대안들을 그려내는 힘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반란들이 대개는 실패했음을 알고 있다. 표준적인 비평의 견지에서 보면, 그것은 이들이 '충분히 발전하지 않은' 사회들에서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짜르 러시아로부터 중국, 베트남, 쿠바, 그리고 니카라과에 이르기까지 이는 마찬가지로 반복된다. 어떤 면에서, 혁명은 조급하게 발발했고, 생산력과 시민사회가 충분히 발전하기 이전에 일어났다. 혁명 체제 일부에서의 권위주의적 조치들은 이 때문에 요구된 것이었고(물론, 엄청난 반혁명의 압력 때문이라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 이들은 생산력과 혁명과정의 지속에 필수적인 민주적 제도들의 보다 많은 발전에 족쇄가 되었다. 모든 이전 사회주의의 공통된 실패는 민주주의를 그 자체 내에 건설하지 못한 무능력에 있었다. 그리고 민주적 기구들이 그 기반 속에 건설되지 못하고, 스스로를 확대 재생산하는 잠재력을 부여받지 못한다면, 어떠한 혁명 운동도 성공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저발전된' 인민들의 혁명적 잠재력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그들 속에서 저발전된 것에는 우리가 소위 선진 사회에서는 평범한 것으로 간주하게 된 자본의 총체적 침투도 들어 있었다. 합리화와 소비주의에 의해 과소평가되긴 했었지만, 이들은 주어진 질서 이상을 기꺼이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일상 생활에는 친숙하지만 맑스주의적 사회주의의 언어에는 낯선 용어로 이를 다시 풀어보자. 아직 상대적으로 자본주의의 손아귀 바깥에 있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저발전된 것은 합리화이다. 그들에게 발전되어 있는 것 ― 그리고 자본주의적 조건들하에서 희석화되는 것 ― 은 그들의 영성(spirituality)이다. 이것이 혁명적 주체를 가능케하는 힘인 것이다.

영혼(spirit)은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잠재력이다. 이는 내재적으로, 즉 사고 속에서나 논리의 법칙으로서가 아니라 자아의 구체적이고 집합적인 생활 속에서 경험된 힘으로서의 변증법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영혼은 스스로를 부정하는 자아의 능력(결국, 그 변증법적 성격)에 속하며, 자신의 경계들(심리학의 관점에서는 에고의 한계들이라고 불릴 수 있을)을 넘어 나아간다. 주어진 것이 해체되고 자아가 보다 큰 전체와의 관계 속으로 재구성될 때 나타나는 것이 인류에서의 그러한 움직임인 것이다. 대조적으로, 종교는 사람의 영적 생활을 일관된 사회적 기획으로 역사적으로 자리매김하는 구속이다. 동시에 종교는 영적 생활의 생산을 위한 환경을 구성한다. 세계의 종교들은 자아를 신성(神性)의 보다 큰 전체, 또는 우주의 어떤 신성한 원칙들과 연관시키거나, 아니면 ― 불교의 경우처럼 ― 사회적으로 구성된 자아의 단지 환상일 뿐인 것으로 가차없이 해소한다.

따라서 혁명적 주체는 또한 영적 기획, 즉 확장된 자아가 교회나 어떤 신성(神性)이 아니라 보편화하는 집단(circle)과 연결되는 기획이기도 하다. 그 집단은 연못의 잔물결처럼, 고립되고 소외된 존재로부터 생산의 집합체로, 그리고 '연대'를 통하여 대자적 계급과 사회주의의 운동을 통한 사회적 변형을 향해 나아가며, 마침내는 계급이 극복된 사회인 공산주의 속에 그 실현을 자리매김한다. 이것이 맑스가 {선언}에서 취한 혁명적 주체의 특수한 의미였다. 영혼에 대한 그의 서사(narrative)는 자본이 운동에 돌입하고 산업 기구와 계급들이 이에 조응하는 순간에 맞추어져 있다. {선언}은 그러한 전체 국면의 영적-혁명적 극복에 관한 것이며, 단지 그 경제적 또는 기술적 구성물들에 관한 것이 아니다. {선언}이 많은 상이한 정치적 경제적 조건들을 가로질러 지속적인 영감의 요청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이의 증거이다.

최근의 상황들에서 일관되고 강력한 종교적 전통이 현존하고 있다는 것은 따라서 단지 사회주의의 적대적 반대자로서보다는, 보다 복잡한 영향력으로 인식되어야만 한다. 사회주의를 향한 기성 교회들의 적대감은 주요한 역사적 사실이며, 신자들에 의한 굴종적 태도의 국제화는 지배 계급들의 주요한 보루일 수 있으며 곧잘 그래왔다. 그러나 강력한 종교들은 또한 역동적인 영적 실존, 타협주의적 잠재력뿐만 아니라 전복적 잠재력을 내재적으로 가진 영혼을 산출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유기적인 사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종교를 중심으로 조직된 세계는, 생활이 정부 당국에 의해 배급되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을 일상적으로 갖는 영적 관심을 지닌 개인들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고, 이들은 적어도 그리스도교의 경우, 계급 체제를 무너뜨리고 어둠과 가난 속에 내던져진 이들에게 복음을 가져다주는 것을 메시지로 갖는 구세주를 그들의 이상으로 삼았다. 특히, 엥겔스의 {독일에서의 농민전쟁}과 함께, 종교를 '인민의 아편'일 뿐만 아니라 '심장없는 세계의 심장'으로 본 맑스의 미묘하고 변증법적인 시각은, 근대 사회주의의 창시자들이 사회주의 혁명에 영적 힘이 필수적임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한다. 맑스는 독일 철학, 프랑스 정치이론 그리고 영국의 정치경제학에 몰두했다고 정확하게 이야기된다. 그러나 여기에 네번째 차원, 즉 근대 혁명 전통에서 만들어진, 급진적 종교개혁(Reformation)으로부터 유래하는 차원이 추가되어야만 한다. 공산주의는 급진적 종교개혁의 세속화였고, {선언}은 예수 대신 프롤레타리아트를 통해 성령의 행로가 움직이는 계시록(Book of Revelation)의 다른 판본으로 간주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이 정착하게 되면서 방향은 역전되었다. 왜냐하면 자본은 상품을 일반화했고, 노동력을 상품으로 전환시키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기 때문에, 유기적 사회를 자아(self)를 극대화하는 개인들의 원자화된 사회로 바꾸면서 필연적으로 자아를 제한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하의 개인은 자아에 매달리고 그것을 내다팔게 된다. 거기에는 혁명적 주체의 출현에 필요한 에고의 급진적 위험감수나 희생을 허용하는 그러한 환경에 남아 있는 충분한 흥분, 열정, 그리고 궁극적으로, 믿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앞서 언급한 이러한 주체의 실패의 표현들, 즉 관료적 합리화, 소유적 개인주의, 그리고 소비주의적 욕망에 대한 집착 등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반(反)영적 과정이 수행되는 매개들인 것이다.

이제까지의 논의는 상실의 논의, 즉, 옛날의 영적 질서의 해소와 자본의 도구에 의한 그것의 대체,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가능성에 대한 그 서글픈 결과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자체는 단지 사물의 한 편을 보는 것일 뿐이다. 또한 여기서 개략적으로 그려진 변형들이 왜 또 다른 사회주의의 시대를 긍정적으로 점칠 수 있게 하는지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좋은 것들과 나쁜 것들도 상실되었다. 사회주의의 첫번째 국면에서 영성의 전(前)자본주의적 원천들이 혁명적 주체의 형성으로 들어서게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순전한 이득만이 아니었다. 의심할 바 없이 영적 열정은 이러한 운동들의 성공에 기여했다. 그러나 전통적 사회주의에 내재한 영성의 종류들은 또한 그것의 몰락으로 인도하고, 경쟁의 가치가 없도록 만드는 데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기도 했다. 전통적 사회주의의 역사를 장식했던 교조주의와 박해의 충동들은 그 종교적 모태로부터 전해져온 것들이었다. 스탈린과 모택동의 극단적 사례에서, 전통적 영성의 형태들은 예전의 것보다 더욱 억압적이고 덜 장엄한 새로운 종교 체제의 노골적인 신성화을 구축하는 것으로 확대되었다. 보다 일반적으로, 전통적 사회주의로 전환된 영적 질서들은 용납될 수 없게 위계적 ― 이들이 대중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는 구세주라는 관념과 결합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 이었고, 더 나아가 그 성격에 있어서 단연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요소들은 전통적 사회주의 내에서 민주주의의 출현에 맞서는 심각한 제한들을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그 몰락에 주된 역할을 했다. 분명 이들이 현대 세계에서 여전히 아주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며, 미래의 어느 사회주의와도 경합을 벌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사회주의는 이들이 영적 동학의 중심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으로 인해 더 이상 부담을 지지 않게 될 것이다.

두번째 추가사항은 보다 추론적이고 복잡한 것이며, 그 완전한 논의는 이 발표문의 한계를 상당히 벗어나는 것일 터이다. 간추려서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전통적 사회주의의 영성은 초기 산업화 시기에, 자본이 노동을 소외시킨 바로 그 세계의 모순들로부터 산출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위한 기회들이 희박하다고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고전적 맑스주의에서 기술된 의미에서의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자본이, 그리고 이와 나란히 특히 역사적으로 생성되는 부정들이 존재한다. 현재 여기에는 착취당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전세계에 걸친 구조적 실업자들과 극빈자들이 포함된다. 이들은 1848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으나, 오늘날에는 현재와 미래의 가장 주요한 쟁점 중 하나로 나타난 또 다른 원천이다. 넓게 말해서, 이는 자본에 의한 생산의 자연 조건들의 절멸의 표현이다. 본질적으로 이는 팽창하려는 만족할 줄 모르는 자본의 요구 그리고 이윤의 극대화 속에서 생산의 자연 조건들을 퇴보시키는 냉혹한 경향 때문인 것이다(제임스 오코너).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일을 '환경적' 위기라고 부른다. 산림, 토양, 하천, 해수와 공기를 포함하는 생태계의 파괴, 수많은 종들의 멸종, 온갖 종류의 오염물질의 도입에 의한 측정할 수 없이 복잡한 영향들을 고려한다면 이는 충분히 정당한 명칭이다. 그러나 환경이라는 관념은 우리 자신들의 외부의 것을 함축하며, 지금 펼쳐지고 있는 위기를 보는 시각으로는 지나치게 협소하다. 왜냐하면 이는 외적 자연뿐만 아니라 건조(建造)된 인간 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며, 또한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의 신체에도 모든 측면에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마침내는 우리의 영적 존재에도 심대하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적 ― 또는 보다 정확하게는 생태적 ― 위기에 대한 영적 대응이 어느 정도로 새로운 사회주의적 주제의 출현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겠느냐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질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파편적 제안들만을 제출할 수 있을 따름이다.

우리는 자아(self)가 다른 자아들(selves)이나 존재들뿐만 아니라, 자연들과의 관계 속에서 출현함을 보았다. 전자의 원천으로부터, 불의를 극복하는 동력의 기초이며 사회주의적 에토스의 한 축인 동료의식이 발생한다. 누군가가 사회주의자가 되는 것은, 자본에 의해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공감어린 동료의식이, 인류에게 존엄성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체제의 계급 관계의 전복이 필요하다는 인식과 결합하는 만큼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화하고 합리화하는 허무주의는 이제까지 이러한 충동을 제어하는 데 성공해왔다. 그러나, 자아의 자연적 기반을 통해 운동하는 생태적 위기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에서, 이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첫째로, 공감어린 분노의 기반은 이제, 지위가 하락한 인간이 축적의 지속적 질서와 계급체제에 의해 멸종되고 파괴당하는 지위가 하락한 다른 모든 생물들 ― 그리고 자연적 구성물들 ― 에 포함되게 될 정도로 넓어졌다.

그리고 두번째로, 합리화의 지반이 냉혹하게 침식되고 있다. 이성의 기초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를 조절하는 능력에 놓여 있다. 이성이 기초하고 있는 생산의 일상화된 과정이 문명의 기초를 절멸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게됨에 따라, 이러한 이성의 정당성은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고 있다. 이는 기존 체제를 넘어서 영적 힘을 잠재적으로 회복하고, 그런 회복에 수반하는 위험을 감수하려는 열의를 가져다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언급된 가능성들을 내가 아주 미약하게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의 실현은 지속적인 투쟁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진실이 '불가피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작업이 행해져야만 한다. 존재하는 권력들, 자신의 헤게모니 앞에 놓여 있는 위험들을 아주 명확히 알고 있는 권력들은 이데올로기적 정당화의 거대한 성벽들을 구축했다. 그들은 자본과 자연 사이의 절대적 대립에 대하여 일반적 공중에게 거의 아무런 의식도 존재하지 않도록, 한마디로 그들의 체제를 '분칠 greenwash'했다. 끝으로, 노동자와 동일시하는 이들과 자연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들 사이에 일어났던 상당한 정도의 적대감을 극복하기 위해서 좌파내에서, 심지어는 사회주의적 좌파의 부위 내에서, 방대한 작업이 행해져야만 한다. 나는 여기서 '적-녹'[동맹 전략의] 딜레마를, 그 해결은 세력들의 실제적 무게를 갖는 현재적 결합점을 실현하는 데 달려 있다는 것 이상의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지금 이 시기에는 참으로 쇠사슬 말고도 잃을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바로 진정으로 새로운 세계, 급진적으로 변형되고 생태적으로 합리적인 생산양식에 기반한 세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