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와 운동 - 1



시애틀 이후의 노동과 국제주의


지난 해 11월 말, 시애틀의 밤은 정말이지 잠못 이룰 밤이었다. WTO 체제의 순탄한 출범을 간절히 바라마지 않았던 초국적 자본의 대변자들에게도 그랬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지구적 연대투쟁을 갈망해오던 일부 진보진영에게도 흥분된 며칠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난 천년을 마무리하는 반골들의 반짝 해프닝이었을까 아니면 새로운 인터내셔널의 전조로 받아들여도 좋은 사건이었을까. 우리는 여전히 궁금하다. 주류 언론의 외신만으로 제대로 읽어낼 수 없는 상황의 전모도 궁금하고 현재 형성되고 있는 전선의 지형도 궁금하다. 과연 국제적 반대세력의 힘은 어느 정도인지, 저항세력 대오의 약점은 무엇인지도 궁금하다.

아래에 묶은 몇 개의 글은 이러한 궁금증을 조목조목 풀어주지는 못하지만 큰 쟁점들에 대한 입장을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피상적인 외신 기사나 논평에서 한 걸음 정도 더 나아가기 위한 읽을거리가 되겠다.

국내 신문에도 정기 투고를 하고 있는 월든 벨로는 우리에게도 친숙하다. 그는 한국의 IMF 구제금융 사태에 대해서도 신속하고 비중있는 견해를 피력해왔고, '남반구 포커스'의 인사로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글 [WTO 개혁은 왜 잘못된 의제인가?]는 인터넷으로 올려져 제법 많이 인용되는 문서이다. 그가 보기에 이른바 'WTO 개혁론'의 입장은 논리적(역사적)으로도 잘못이지만 현실적으로도 가능성이 없는 대안이다. 이 불철저한 대안은 보다 다원적이고 유연한, 민중들과 제 3세계가 통제력을 조금이라도 더 가질 수 있는 국제 무역체제의 수립이라는 목표를 흐릴 뿐이다. 그는 예전의 GATT 체제가 가졌던 상대적인 장점을 여러 차례 언급하는데, 이는 과거 회귀론이라기 보다는 역사적 사례 속에서 보다 현실적인 가능성을 찾고 교훈을 추출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시애틀 이후 WTO 철폐론과 개혁론 사이의 대립은 국제 운동진영 사이에서도 상당히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벨로의 글은 이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되는 충분한 논리를 제공하는 듯하다.

프랭크 보저스는 시애틀 현장 속에서 나타난 기성 노동운동의 몇 가지 모습 속에서 신자유주의 반대세력들 사이의 미묘한 균열과 약점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미국 노동운동의 경우 시애틀 현장에서 가능성과 한계를 뚜렷이 드러내었다. 국제적 신자유주의 반대운동 전선에서 각국 노동운동이 노정하곤 하는 일반적 경향으로 시사를 준다. 보저스는 노동운동이 국제적인 진보운동의 선봉이 되기 위하여 해결해야 할 몇 가지 과제를 잘 정리하고 있다.

중국의 WTO 가입 문제를 둘러싸고 노동운동 내부의 일정한 퇴행도 목격되고 있는데, 신자유주의 반대보다 중국반대의 목소리가 더 높았던 지난 4월의 워싱턴 시위는 이런 우려를 더욱 심화했다. 홍콩의 저널리스트 쩨 팡 체웅은 중국 노동계급의 상태를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중국의 WTO 가입은 미국 노동계급의 이해만이 아닌, 중국을 포함한 세계 노동계급의 이해를 침해하는 것임을 주지시킨다. 물론 결론은 중국 반대나 사회적 조항의 삽입 따위가 아니라, WTO와 신자유주의 무역체제 자체를 반대하는 국제적 투쟁이라는 입장의 재확인이다.

그렇다고 여기에 실린 자료글들이 시애틀 이후의 노동과 국제주의의 상태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새로이 획득한 인식과 조직력만큼이나, 앞으로 넘어서야 할 도전들의 무게를 직시하고 '과학적인' 대응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무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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