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와 운동



남아공 변혁운동 논쟁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혁명이 아닌 타협을 통해 종식된 뒤 남아프리카의 정치 상황은 많은 이들에게 전례없는 실험으로 여겨지고 있다. 분명히, 오랜 역사를 지닌 좌파 변혁세력이 집권하고 있는데도, 사회 체제는 극히 완만한 변화만을 보이고 있다. 미테랑의 프랑스도 아니고, 아옌데의 칠레도 아니다. 그렇다고 케렌스키의 임시정부는 더더욱 아니고 . . . 모두들 새로운 개념을 찾기에 분주한 형편이다. 가령 어떤 이들에게는 타협을 통한 민주화의 위대한 실례이고, 어떤 이들에게는 타협의 불만족스러운 현실이 끝내는 혁명의 폭발을 가져올 폭풍 전야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모호함으로 인하여 남아프리카는 서로 다른 정치적 경향을 지닌 이들에게 자신들의 우군으로 강제징발되는 형편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한노사연)와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한노정연)의 '사회적 조합주의' 논쟁 역시 이와 같은 맥락 위에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사실을 이야기하라면 논쟁의 두 진영 다 남아프리카의 현실에 대해서는 "내가 보고싶은 것만 본다"는 주관주의에 입각해 있다. 어쩌면 남아프리카에도 그 쪽의 '한노사연'과 '한노정연'이 있을텐데, 각각 자신의 구미에 맞는 부분만을 떼어다 이것만을 받아먹으라고 외치고 있는 격이다.

이런 태도가 아쉽게 느껴지는 것은, 이로 인해서 우리가 더 많은 교훈을 얻을 수도 있을 남아프리카 현실의 복합성, 그리고 남아프리카 변혁세력의 성실한 고민--'해답'이 아닌!--은 오히려 시야에 잡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일례로, 분명히 국유화를 비롯한 사회화 정책을 명시하고 있는 남아프리카 공산당의 결의안을 서구 사회민주주의와 다를 바 없는 것이라고 애써 오른쪽으로 돌리는 한노사연의 윤효원 씨의 태도를 보라. 이에 비하면 "구조변혁적 노동조합주의"라는 한노정연의 김영수 씨의 소개는 분명 격을 달리 하는 것이지만, 그의 경우에도 윤효원 식의 소개와 남아프리카 변혁노선 사이의 차이만을 강조하다가 그 변혁노선 내부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역동적인 측면을 일면화시키는 듯한 느낌이 있다.

이는 가령 '구조변혁적 노동조합주의'의 내용으로 거론되는 것들이 결국은 사회주의의 원칙적 내용들과 별반 차이가 없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이유가 된다. '계급 중심성'의 강조에 더하여 '구조변혁'의 의미를 채워야 할 내용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하는 수준에까지 논의를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본 편집부에서도 이 주제를 가지고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했지만, 그 자리에서 우리가 얻은 가장 큰 결론은 남아공의 정치지형과 역사적 맥락, 그리고 노동조합운동이 그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너무도 특수하여, 그것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무척 어렵다는 것이었다. 사정이 그러할진대, 여기서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전범을 척척 끄집어 내기란 더욱 어려울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국내에서 벌어졌던 '사회적 조합주의' 논쟁에 대해 몇가지 코멘트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 논쟁이 갖는 문제점들은 이미 몇몇 논자들이 지적한 바 있다. 우선 논쟁의 당사자들이 조합주의 또는 구조변혁주의의 내용보다는 딱지붙이기와 말꼬리잡기로 논의를 전개했다는 점이다--사실 어느 쪽도 '조합주의'의 구체적 내용이나 '구조변혁'의 전략 프로그램을 '심각하게' 논의하지 않았다. 또한 COSATU의 노선과 이념 자체를 단일하고 모범적인 것으로 상정한다는 점, 그리고 남아공의 복잡다단한 정치지형에서 노조조직만을 따로 떼어서 보았다는 점 등.

하지만 무엇보다도 눈에 띄었던 것은 노조조직의 한 연구보고서가 모든 논쟁의 출발이자 귀결점이었다는 점이다. 보고서의 담당자인 셉템버위원회 스스로가, 미완의 연구이며 과제를 더 많이 남겨두고 있다고 밝히고 있는 것을 보면,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어쨌든 얼마 전 한노사연이 직접 이 보고서를 국역하여 출간했지만, 읽어본 '소감'으로는 오히려 한노사연 측이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상당히 재단하여 소개했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첫째, COSATU가 실리적(빵과 버터의) 조합주의, 모세 조합주의, 지그재그 조합주의 라는 낡고 나쁜 세가지 노선을 비판하면서 '사회적 조합주의'를 주장했다고 하는 윤효원의 소개는 앞뒤를 뚝 잘라낸 단순화이다. COSATU는 집권 3자동맹의 전개방향에 따라 남아공의 미래에 ① 3자동맹이 깨지는 '광야', ② '스코로코로'(좌충우돌하는 상황), ③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재건과 발전을 기반으로 사회변혁을 성취하는 것), 이렇게 세가지의 시나리오가 놓여져 있으며, 현 상황은 스코로코로에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향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거기에 적절한 내용을 '사회적 조합주의'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 번째 시나리오의 경우에도 노조운동의 독립성이 훼손되거나 사회주의의 전망이 희석화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나리오가 전개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항상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러한 문맥을 제쳐두고 전투적 조합주의의 반정립으로 자신의 주장을 '사회적 조합주의'로 내세우는 것은 조선일보가 최장집 교수의 저서를 인용하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태도이다. 남한의 노동운동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고사하고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광야로 나가보지도 못했던 것은 아닌가?

둘째, 보고서 전체에서 인상적인 것은 제도적 정책참가 문제 보다는 작업장에서의 노동역량 강화나 공공부문 개혁, 지역 및 사회부문의 개혁과 사회화 프로그램이다. 이를 위해 간부의 역량강화부터 사회적 기금이나 협동조합 강화까지 다양한 문제들이 논의되고 있는데, 한노사연의 제안은 이에 비하면 오히려 너무 소박하고 앙상한 것이다.

셋째, NEDLAC을 거론하면서 심지어 노사정위를 이와 등치시키거나 활용가능성을 주장하는 것은 전혀 근거없는 것이다. NEDLAC은 지금 한국의 노사정위가 아니라 사회경제 정책 논의를 총괄하는 초법적 권력기구의 위상이기 때문이다. 이 역시 이행전략과 3자동맹이라는 배경없이는 끌어대기 어려운 사례임이 분명하다.

물론 셉템버 보고서가 남아공 변혁운동의 전체도 아니고 대표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한노정연이 윤효원을 비판하면서 이야기하지 않은 함의들도 이끌어낼 수 있을 것 같다.우선, '사회적 조합주의' 일반을 거부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사회적 조합주의는 부문이나 지역에 따라 채택 필요성과 방향, 정도가 다른 노선이다. 예를 들어 공공부문의 경우가 가장 잘 들어맞는다. 즉 사회적 조합주의는 어떤 교범이라기 보다는 비전과 프로그램의 묶음이며, 하나의 지향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무디(K. Moody)의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주의'와 충분히 상통하는 것이라 보여진다.

둘째, 노조운동의 부문과 의제를 확장하는 문제. "국민과 함께가는 노동운동"이 싫다고 '국민을 이끄는 노동운동'까지 방기해서는 안되는 것이 아닌가. 이 점에서 COSATU는 충분한 참고를 제공한다.

셋째, 민간부문의 이해당사자(stakeholder) 부문으로의 개혁이라는 프로그램. 보고서는 이해당사자의 권리가 자본의 부분적인 사회화를 의미한다고 이야기한다. 더불어 국가부분 개혁과 확대, 종업원 투자기업과 협동조합, 포괄적인 사회적 임금 등의 제안들은 '이해당사자'라는 개념이 블레어의 노동당과는 사뭇 다르게, 체제이행의 키워드로 발전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듯하다.

아래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남아공 변혁운동의 지형은 매우 복잡하고 미래도 매우 불투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COSATU가 아닌 다른 방향에서, 즉 변혁운동 정치세력들의 구상과 주장들을 통해 이 문제를 비춰보기로 한다. 이 간략한 소개글의 목적은, 김영수가 "구조변혁적 노동조합주의"라고 부르는 남아프리카 노동운동의 노선이 형성되는 데 일조하고, 뒤에 자료글로 덧붙여진 남아프리카공산당(SACP)의 문건들에 녹아 있는 기본정신에도 일정한 기여를 한 논쟁들을 소개함으로써 남아프리카 변혁운동 학습의 생산성을 좀 더 높여보자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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