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at Issue?


월러스틴의 한국적 수용

 

우리는 현실 사회주의 70년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간 이후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이제 그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다. 자본은 전세계를 하나로 통합하여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이제 이 자본주의의 규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자본의 논리는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해버린다. '어떤 것이 옳은가'에 대한 고민은 '어떤 것이 유리한가'에 대한 계산 앞에 설자리를 잃는다. 이곳 저곳에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지만, 그것을 엮어주는 하나의 흐름은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이 '자본의 시대'는 결코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 대한 그 어떤 회의도 허용치 않는다. 다만 적응하느냐, 도태되느냐의 양자택일만을 강요할 뿐이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문제는 세기말의 세계가 온통 잿빛이라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실종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질문 자체가 실종되니 해답이 나올 턱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해주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해 줄 '큰 이론'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를 거대담론이라 부르든, 이념이라 부르든, 혹은 전체 줄거리라 부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겪어온 날들과 우리의 현재를 어떤 질서 속에서 설명해주고, 그 바탕 위에서 미래를 꿈꾸며 오늘의 실천을 기획할 수 있게 해주는 큰 이론을 가질 수 있다면, 잿빛의 현실은 오히려 우리를 고무하고 자극하는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현실 속에서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자꾸만 실종되어가고 있다.

과거의 문제들은 여전히 똑같은 문제들로서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체념 속에서, 대안의 부재 속에서 그 문제들이 덮여 있다는 것뿐이다. 하지만 희망을 잃어버린 듯 보이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는 무엇이 남아 있는가? 역사가 끝났다는, 이제 그냥 그렇게 살기만 하면 된다는 기쁨과 안도가 우리들의 가슴 속을 메우고 있는 것일까? 아니, 여전히 문제는 그대로이다. 문제가 그대로이니 우리들의 과제도 그대로이고 우리들의 삶은 여기서 멈춰 설 수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묻자. 우리는 어떤 삶의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대안적 삶을 희망할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실천을 해야 하는가?

이 글은 다시 이러한 질문들과 맞서기 위한 출발점으로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미국의 사회학자 월러스틴 (I. Wallerstein)의 이론과 그 한국적 수용 양태를 검토해 보고자 한다. 이 작업은 다음과 순서에 따라 진행될 것이다. 먼저 2절에서는 월러스틴이 지금 우리에게 가지는 의미를 총론적으로 살펴본다. 이어 3절에서 그의 이론틀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 주제들을 가려내 검토해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4절에서 우리 사회에서 월러스틴이 수용되어온 양태를 비판적으로 검토해본 후, 결론부에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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