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는 글


해적판만은 아니다

 

반가운 일들이 있다. 우선 무엇보다도 모임이 아직 망하지 않았고, 단행본도 하나 냈으며 이제 세 번째 성과물을 낸다. '카피레프트'라는 개념도, 그 뜻이 제대로 이해되는지는 몰라도, 여기저기서 원용, 전용되고 있음을 본다--하긴, 그 진짜 뜻은 우리도 잘 모른다. "진보적 사상의 대중화"라는 고전적 기치에 좀더 천착하기 위해 그 개념을 편의적으로 빌어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의 작업과 의견 교환은 이 '빌려쓰기'가 꼭 실용주의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얼마전에 갱신한 웹페이지에서 우리는 우리의 지향을 "진보적 사상에 대한 대중적 접근성(public accessability) 확보"와 "자본, 저작권, 권위로부터의 독립"이라고 정리해 올려 놓았다. 물론 '퍼블릭 억세스'나 '자본과 저작권으로부터의 독립'은 카피레프트라는 개념이 기원한 프리 소프트웨어 운동으로부터 빌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전용은, 비록 그 때문에 정보통신운동 모임으로 종종 오해받곤 하지만, 비교적 적절했던 것 같다. 우리는 진보적 사상에 대한 대중적 접근 통로가 매우 협소하며 그 기본적인 '서비스', 예컨대 식자들의 지적 작업들이 우선 양적으로 너무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한 접근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장애물로 자본, 저작권, 권위를 지목했던 것이었다.

이 판단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 중에서도 소개되는 이론의 편중성과 매체의 협소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전자는 우선 연구자들의 자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이를 우회하기에는 정보 자원 및 언어의 장벽이 너무 높다. 그래서 우리는 베끼고 번역하고 소개하는 작업이, 비록 보잘 것 없는 노가다일지언정 무척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 너희들의 이야기는 조금이고 번역만 해대느냐고 해도, 당분간은 이러한 시초축적이 필요한 것이기에 우리는 계속 그럴 것이다.

후자의 장벽은 여러 가지 것으로 나타난다. 팔릴만한 내용만 돈이 되는 방식으로만 가공되고 유통된다는, '자본'에 의한 장벽은 몇차례 지적한 바 있다. 저작권의 문제는 장인적 권리 일반에 대한 반대라기 보다는, 그것의 자본화 과정을 비판하고자 함이었다. 또한 그것을 '은밀하게' 베끼면서도 자기 것인양 가장하고 이를 독과점하려는 풍토에 대한 문제제기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권위의 문제는 두가지 방향에서 이야기해야만 하겠다.

우선 외부의 권위. 이는 무엇보다도 국가보안법의 존재이다. 가수 정태춘이 가요 및 음반에 대한 사전심의 철폐운동을 외로이 벌일 때, 그는 사전심의라는 것이 예컨대 불온하지 않은 노래를 만드는 아티스트들의 머리 속에도 족쇄로 작용하여 그 내용을 솎아내고 무의식까지 훈육한다는(물론 그가 이런 표현을 썼던 것은 아니지만) 점을 이야기했었다. 하물며 국보법은 시도때도 없이 직접적 훈육까지 해대지만, 다수의 처세술은 간단히 피해가는 것이다. 그러나 노래의 사전심의 철폐의 혜택은 외로이 싸운 이만이 아닌 모든 음악인들에게(서태지에게?) 돌아갔듯, 국보법 철폐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상의 자유로운 습득과 교환이 넘쳐나는 것.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그렇게 멋있게 주장하고 담론의 정치를 역설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이 정말이지 기본적인 전근대적 장벽을 허물지 않으면 안된다. 세계 인권선언 50주년, 국가보안법 제정 50주년에 걸맞는 대응을 해주어야만 하겠다.

그리고 내부의 권위들. 이 점에서는 강준만 선생의 정력적인 작업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으리라. 우린 이러한 문제들을 아직까지는 '해적판 저널'과 통신공간에서의 작은 활동으로 제기하는 정도이니까.


심심한 일들도 있다. 모임은 여전히 작고 아마추어 수준의 역량도 못된다. 틈새 시장은 비집고 들어갈 수 있어도, 문제는 우리만의 활동이 아닌 '흐름'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혹자들은 공연히(아니 송구스럽게도) 과도한 기대를 보낸다. 한참은 이 기초작업을 계속해야할 판인데, 일꾼들은 여전히 소수이다.

말이 난 김에 '광고'를 하자면 이렇다. 같이 할 이들이 더 있으면 좋겠다. 잠깐씩, 간접적으로 결합하는 이들이 더 필요한 셈이다. 큰 영역은 주제연구와 리뷰작업이 될 터이지만, 통신 공간으로 제안과 의견을 교류하고 성과물을 만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열려있다. <읽을꺼리>도 일종의 동인지 보다는 그러한 공론장이자 공동의 성과물로 역할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기존의 정형화된 학술지나 시사지들이 담지 못하는 발본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담길 수 있도록, <읽을꺼리>는 그 틀을 아메바처럼 바꾸어나갈 용의를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 책이 '해적판'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긍정적 가능성들은 이 책에 관심을 갖는 이들에게 기대하는 편이다.

그 숱한 오타와 오역에도 불구하고, <읽을꺼리>를 읽어주는 모든 이들께는 다시 한번 감사할 따름이다.

 

1998년 8월
카피레프트모임

[앞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