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는 글


이론과 운동의 공유와 논쟁을 위한 카피레프트

 

카피레프트

떠난 이들이 있고 남아있는 이들이 있으며, 망한 운동이 있고 지속되는 운동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남아있는, 지속되는 운동 속에서도 이론 진영이 응분의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 얘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아니, 그 충족정도를 떠나서 도대체 어떠한 '관점'을 가지고 자신의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지조차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지금이다. 각자의 연구실에 틀어박혀 자신의 패거리를 이끌면서, 갓 수입한 이론 하나로 혹세무민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랄까. 우습게도, 구멍가게 같은 이 바닥 안에서도 연구자들은 서로 고립되어 있고 닫혀 있으며 그것이 한편으로는 무책임과 방기를, 다른 한편으로는 '수동적 권위'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다시 '프롤레타리아 과학'이 강림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 자신의 연구작업이 '운동'이자 '교육'이라는, 이론적 사회적 자리매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90년 전후 남한에 알튀세르가 소개될 때, 또 푸코와 데리다가 주목받을 때 우리가 그것을 상대화시켜 볼 수 있었다면, 스탈린주의와 서구 맑스주의 운동의 우여곡절이라는 맥락에서 받아들일 수 있었다면, 우리는 지금 다시 '탈근대'라는 거대담론과 대면하기 보다는 그들 이론의 자원을 남한사회를 이해하는데 유용하게 써먹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른바 좌파 이론시장의 침체 혹은 불균형성은 주지의 사실이다. 출판업 자체의 불황, 지배적 이론 담론의 소멸이 배경이 되겠지만, 각 사회과학 출판사들은 이미 시장성이 확보된 말초적 제품들을 고가에 내어놓는 전략을 택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대중(독자)들의 기호는 마찬가지로 편벽되어갔다. 시장을 협소화시켜놓고 그 안에서 출혈경쟁을 벌이는 자기소모적인 방식인 것이다. 결과는 무엇이었나. 프랑스 철학과 문화연구만이 좌파 이론의 전부인양, 이제 그것 밖에는 쓸만한 얘기꺼리가 전혀 없느냐는 자성마저 나오고 있다. 80년대 초중반 오히려 풍부했던 다양한 네오맑스주의적인 모색들이 레닌주의의 도입으로 축출된 후, 그나마 사구체이론 시절을 풍미했던 경제학과 역사이론 마저 사라지고 나자 아직까지 발언을 계속하고 있는(!) 몇몇 논객들의 개인적 연구가 학계를 지배하고 있는--적어도 외적으로 '권력'을 행사하는--기이한 현상이다.

모두들 이럴 수는 없다고, 이래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백화제방으로 이 답답한 현상을 타개하는데는, 진지하고 풍부한 논의를 이끌어내는데는, 자본과 제도라는 장벽이 가로막혀 있다. 좌파이론의 재생산 메커니즘마저 자본재생산의 메커니즘에 종속되어있다는 것은 결코 신기하지도 않은 역설이다. 팔릴만한 이론이 돈이 되는 방식으로 소개되고 유통될 수밖에 없다. 출판자본이나 저작권 이외에 연구자의 '생계'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게다가 대학, 또는 이론가 집단 내지 학회 등의 제도 역시 전형적인 배제와 규율의 메커니즘을 구성한다. 새로운 이론(대개는 서구학자들의 저작을 지칭할)은 이론가들의 연구실에 갇혀있고 간간이 이런 것도 있다고 소개하는게 그들의 유일한 연구작업이 된다. 현실에서 구체적으로 맞닥뜨려지지 않으니 논쟁은 소멸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서 이 구멍가게 이론시장은 더욱 황폐화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완전하게 설명해내는 새로운 이론을 모세가 십계를 얻듯이 받아들이거나 만들어내는 것이 필요한 시기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오히려 요구되는 것은 갇혀진 이론들을, 부분적인 연구 성과들을 끌어내고 소통시키고 대중화시키는 것, 그럼으로써 추상적 논의들을 상대화시키고 자극시키는 것이다. 지식이 개인의 전유물이 된 것은 계급이나 민족이 그러한 것처럼 '역사적'인 현상이다. 이론이 연구자들의 전유물이 된 것 역시 어찌보면 남한에서는 90년대 이후 등장한, 그리고 서구에서는 '서구맑스주의'로 지칭되기도 하는 '역사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그 때문에 이는 당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며 타파되어야할 구조이다. 왜 우리는 언어의 장벽을, 자본의 제약을, 저작권을, 그리고 연구자의 권위를 좌파 이론진영 내에서조차 당연하다고 여겨야 하는가. 우리는 진보적 정보운동에서 주장한 'copyleft'라는 조어를 알고 있다. 자본과 권력의 정보독점이나 일방적인 정보 주입에 반대하는 광범위한 운동으로, 'right'(권리/소유)가 아닌 'left'(공유)라는 관점 말이다. 좌파 이론에서야말로 새로운 copyleft 운동이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닌가. 자본이 강제하는 유무형의 제약, 그리고 이론진영의 관성적 체계가 부과하는 폐쇄적이고 수동적인 풍토에 대한 반대로서 말이다. 이론가의 연구는 대중들에게 copy되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견해는 활동가들에게 copy되어야 한다. 그것은 배타적인 권리(right)가 아니라 공유의 의무(left)이다.

언더그라운드

지하(언더그라운드) 저널운동이라는 말을 함부로 썼다가는 <깃발>이나 <선봉>, 혹은 <노동계급> 등을 발간했던 선배들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되리라. 사실 그 즈음 잡지 하나 내는 일도 '지하'운동이 아닌게 어디 있었는가. 그러나 군부독재의 가시적인 물리적 폭압 이후에 다가온 새로운 압박, 즉 앞서 이야기한, 자본에 의한 이론과 연구의 종속 현상은 다시 이러한 말장난을 가능케 한다.

우선 가장 직접적인 것으로서, 연구자들의 활동이 국가나 거대자본의 지원과 연구소 및 대학이라는 제도에 완전히 편입되게 되었다. 70-80년대를 특징지었던--투신이든 연구작업이든 간에 지식인들의 현장과의 결합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전제가 되었던--수공업적, 게릴라적, 발런티어적(혹은 자생적) 학술활동들은 이제 이러한 메커니즘 속에서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으며 실제로 그 내외부에서 거의 존재하지도 않는다. 몇 년 전부터 학술지에 실린 아티클에 으레히 따라붙는, "본 연구는 OO부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 (혹은 OO의 의뢰를 받아) OO의 기간에 수행된 공동연구 XXX의 일부임을 밝힌다"는 문구는 이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더 이상 운동의 당위--혹은 '정세적 요구'로부터--로부터 자발적으로, 혹은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연구는 존재하지 않으며 지식인은 모두 누군가의 원료 공급과 감독 하에 상품을 생산하는 '지식기사'가 되었다고 죽은 비유를 쓰는 것도 지나치지 않다. 산학협동은 모든 제도권내 학술활동을 집어삼켰다.

또한, 베른 협약의 발효 이후 저작권의 문제가 등장했다. 이는 한편으로는 자본에 의한 압박의 일부로, 다른 한편으로는 권위의 요소로 나타난다. 출판사들이 운동의 침체와 전반적 불황이라는 배경 아래, 저작권의 문제는 팔릴만하고 쉽게 승인을 얻을 수 있는 저자와 소재 만을 편향되게 공급하는 현상의 출현에 일조했다. 실제로 얼마나 사용권료를 지불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창작과 비평> 같은 경우 몇해 전부터 " . . .한국어판 ⓒ 창작과 비평사 1997" 과 같은 방식으로 저작권 승인을 자랑스레 표시하고 있다. 최근 창간된, 세계의 사상을 소개한다고 표방한 어느 학술저널은 프랑스 최고의 대중지성지 XX지와 저작권 독점계약을 맺었다는 것을 첫 선전문구로 뽑고 있다. 자본이 부과한 제도에 스스로 편승하여 권위를, 결국 상품가치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대중음악에서 사용된 '언더그라운드'라는 용어는 정치적 억압 뿐만 아니라 자본과 제도의 굴레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흐름이며, 독립적 생산/배급/유통망의 확보라는 기술적 문제와 동시에, 생산과 향유의 대중화(민중화)라는 이념과 정서를 기저에 깔고 있다. 지식과 이론이 90년대 들어서 정치적 폭압 보다는 자본과 제도에의 종속이 더 지배적인 구조적 문제가 되었다고 할 때, 그 정황 뿐만 아니라 대안적 요소까지도 언더그라운드 음악의 그것을 유비시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론의 자본과 제도와 권위 및 관습으로부터의 탈피, 생산과 유통의 대중화(염가화, 다변화 등을 통한), 내용과 형식의 자율성과 실험정신 등등. 이와 같은 것들은 원래 우리 '선배들'의 것이었으되 상실하거나 박탈당한 것들일뿐이다. 오히려 문화운동 단위에서 이것들이 살아있는 화석처럼 남아있음을 본다. 돈이 없다, 대중성이 없다, 제도적 제약이 있다... 그러나 몇명이 모여 스스로 작곡하고 연주하고 녹음하여 인디레이블 음반을 만들고, 땅밑달리기를 하면서 고군분투하고 있다. 기존의 틀이 너무 거창하고 몸들이 너무 무겁다면 다른 '경제적'이고 '기동적'인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이론 저널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그 한가지 방식으로 우리는 해적판 언더그라운드 저널이라는 실험을 해본다.

자본, 저작권, 그리고 권위로부터의 독립

이 자료집인지 저널인지 모를 부정기 매체가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카피레프트와 언더그라운드라는 새롭지 않은 발상의 조합이 상당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험해볼 참이다. 갇혀있던 논의에 시비를 걸고 묻혀있던 이론들과 운동의 이야기들을 제한없이 끌어내려 노력할 것이다. 당연히 이 잡지의 글들은 마음대로 복제, 복사할 수 있으며, 어떤 자료를 '카피레프트'해보자고 제안한다면 더욱 기쁠 것이다. 투고나 주장의 공간도 열어놓을 생각이다. 우리는 이걸 사 보라고 하기 보다는, 이론 진영에서의 '자본, 저작권, 그리고 권위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방기되었던 정신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1997년 11월
카피레프트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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