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레어의 벨벳 혁명에 대한 고찰


로빈 블랙번

 

* <읽을꺼리> 1호 '정세와 운동' 란을 위해 기획, 번역되었다가 지면 관계로 탈락된 글입니다. 작년 노동당 총선 승리 직후에 씌어진 글이라서 시의성을 많이 상실했지만 외신을 통해 간략히만 소개되는 영국 정황에 대한 참고자료로서는 아직도 소용 닿을 데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읽을꺼리> 1호의 마크시 글이나 copyleft 모임의 본 자료란에 올려진 영국 진보정치 관련 후속 기사와 함께 읽으면 영국 진보정치의 흐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다음의 글과 함께 읽어보기 바랍니다.

- fHUMAN 런던 위원회, ['유연화-착취'와 노동자의 저항], 전태일을 따르는 민주노조운동연구소 편역, {신자유주의와 세계민중운동}, 한울, 1998.

 

[1997년 5월] 총선거에서의 보수당의 전면적 패배는 세계 모든 곳의 좌파에게 만족스러운 소식이며 참으로 희열을 불러 일으키는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대처와 메이저의 통치는 자유시장이라는 병균의 전지구적 선구자였고 특히 유럽에서 사회 진보의 적이었기 때문이다. 영국 정치에서 보수당의 궤멸은 하나의 중대한 분수령을 이룬다. 고작 32%에 그친 득표율은 토리당으로선 1832년 이래 최악의 결과였다.

그러나 지금 이 결과는 개혁 시대의 도래를 확정짓기보다는 체제 위기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물론 하원에서의 노동당의 압도적 다수는 꽤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노동당은 하원의석의 60%를 차지했지만, 그 득표율은 44%로서 마가렛 대처의 가장 높은 득표율보다 겨우 털 끝 하나 정도 앞선 것일 뿐 아니라 대처 당시보다 낮은 투표율하에서 거두어진 성과이다. 그러나 대처의 43.5%는, 습관적으로 보수당에 투표한 것이든 혹은 [좌파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런 것이든, 아무튼 그녀의 정치에 대한 지지의 외적 한계를 표현해주는 것이었다. 1997년의 총선에서 신노동당(New Labour)의 득표에는 자유민주당(17%에 이르는)과 스코틀랜드 및 웨일즈 민족주의자들을 지지하는 표가 섞여 있다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들 세 정당들은 사회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신노동당보다 급진적인 훌륭한 요구들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 64%의 투표자들이, 스코틀랜드 의회에 대한 스코틀랜드 주민들의 총투표, 상원에서의 세습귀족 의원직 폐지, 선거개혁과 유럽 (통합) 등에 대한 국민투표 등을 포함하는 민주화 조치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제시하는 정당들을 지지했다. 전보다 더욱 돋보이지 않을 수 없는 것은 하원 의석을 두 배로 늘려 46석을 차지한 자유민주당과 자치문제에 특별한 기여를 한 [스코틀랜드 등의] 민족주의자들이다.

아무튼 신노동당은, 비록 어떤 모호함이 존재하긴 하지만, 자신의 프로그램--'현대화', '소수가 아닌 다수'를 지향하는 정책들, '국민적 혁신' 등등--을 통해 'UK민중들(Ukanian)'의 벨벳 혁명이라는 그 자신의 독특한 약속을 던져주었다.( Robin Blackburn, "Reflections on Blair's Velvet Revolution", NLR no.223, 1997.)

투표일 밤에 로빈 쿡(Robin Cook){ 현 내각의 외무상인 영국 노동당 중도좌파 지도자}은, 노동당의 승리를 가능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 보수당이 수행한 역할을 부정하는 것은 인색한 일일 것이라고 논평했다. 경제가, 시쳇말로, 잘 돌아가고 있긴 하지만, 1992년 '검은 수요일(Black Wednesday)'에 파운드화가 ERM으로부터 불명예스럽게 추방되어버리자 보수당 정부는 파괴적인 타격을 받아 그 신용을 회복하는 데 실패하고 말았다. 보수당의 오랜 지지자들중 다수가 자신들의 이제까지의 지지를 후회할만한 충분한 이유를 지녔다. 약 150만의 주택 소유자들은 자신들의 주택의 가치가 점점더 증대하는 골치아픈 담보 가치 이하로 급강하하게 됨에 따라 '부정적 형평성'의 압박에 몰리게 되었다. 또다른, 적어도 100만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민영화된 연금이 별로 만족스럽지 못한 수입원에 불과하게 된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또다른 많은 이들은 점점더 임시직과 한시직종이 늘어가고 있는 고용 시장에서 자신들의 미래 전망을 발견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걱정하거나, 아니면 공공 의료와 교육의 퇴락을 체험하고 있다. 보수당 의원들의 거만함과 부패, 새로이 민영화된 산업들에서의 사장들의 사리사욕 챙기기,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유럽 화폐 통합에 드리워져 있는 심대한 분열 등등 또한 보수당 지지층의 이반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준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이 인상적이긴 하지만, 보수당의 자기파괴의 동인들이 이것들로 모두 설명되는 것은 아니다. 로빈 쿡의 논평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전체적인 결과에 대해 토니 블레어(Tony Blair)와 신노동당이 끼친 기여를 부정하는 것은 그 역시 인색한 일일 것이다. 그들은 이제까지의 경험에 근거해 중도노선의 분위기를 띠우고 타블로이드판 신문사 사주들 비위를 맞추는 데 열과 성을 다함으로써 이전에 결코 노동당을 지지해본 적이 없는 층들로부터 다수의 지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이는 또한 노동당의 잠재적 지지층이지만 1970년 선거 이후 노동당을 버렸던 중간층 노동계급의 여러 계층들---소위 C2라 불리는 숙련 육체 노동자들과 C1이라 불리는 비경영직 사무 노동자들---을 다시 장악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NOP의 출구 조사에 따르면 C1중에 노동당에 투표한 이들은 1992년에는 32%였던 것이 1997년에는 47%로 증가했고, 노동당에 투표한 C2는 1992년에 35%였던 것이 올해에는 54%로 증가했다. 보수당은 고작 26%의 C1과 25%의 C2의 지지만을 얻었다. 보수당이 노동조합원들중 18%의 지지만을 얻은 데 반해, 노동당이 57%의 지지를 얻은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다. 보다 주목받을 만한 것은 담보잡힌 채무자들중 29%가 보수당을 지지한 데 반해, 노동당은 그들중 46%의 표를 획득했다는 사실이다.{이 수치들은 The Sunday Times, 5월 3일자에 실린 것이다.}

세금문제에 대한 노동당의 고려는 변덕스러운 피고용인 유권자들의 지지를 획득하는 데 있어서 한 강력한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자영업자들과는 달리 C1과 C2는 PAYE 체계 하에서 수입으로부터 가장 많은 세금을 공제당하는 계층이다. 그리고, 경영직, 전문직 계급들과는 달리 이들은 세금 지출분을 벌충할 출구를 전혀 갖고 있지 못하다. 재분배적인 복지, 조세 체계를 요구하는 이들은 노동계급에 대한 과중한 과세는 역사적으로나 산술적으로나 오류라고 주장하고 있다. 1940년대 중후반에는 피고용인들중 오직 반수만이 수입에 대해 세금을 지불했다. 그리고 정의상(定義上) 진정으로 진보적인 조세 및 복지 체제라면 평균 소득 언저리의 계층에 순 세금공제를 설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러한 추론은 수입세의 일반 세율을 올리지 않기로 한 노동당의 공약을 정당화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보다 고소득의 계층--즉 매년 5만 파운드 이상을 버는 소득자들--에 대하여 부과되는 세율도 올리지 않기로 한 노동당의 공약은 분명히 정당화하지 못한다.

노동당 조세 공약은 또다른 불길한 측면을 지니고 있다. 노동당은 정부로부터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막을 수 있는 좋은 방책을 박탈하고 통화 당국을 이자율에 과잉 의존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고금리 체제에 의존하게 된다면--이는 정부의 결정력을 잉글랜드 은행(Bank of England)에 넘겨주기로 한 노동당의 결의에 의해 증대하고 있는 가능성인데-- 이는 분명 무거운 희생으로서 투자를 위축시키고 파운드화의 가치를 상승시켜 고용과 소득 상의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신노동당의 중도적인 처신은, 민중들의 기대를 무디게 만드는 것이 그 의도적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우선, '한 국민 [국가](one nation)'{역주 - 대처의 '두 국민' 전략에 대항한 전략. 대처의 '두 국민' 전략에 대해서는, 봅 제솝 외, [권위주의적 민중주의, 두 국민, 그리고 대처주의], 김호기 외 편역, {포스트 포드주의와 신보수주의의 미래}, 한울, 1995.를 참고할 것.}을 건설함으로써 사회적 골을 치유하겠다는 그 선언적 목표는 그들이 대처주의 유산을 수용한 것과는 화합할 수 없다. 두 번째로, 원내 의석확보에서의 노동당 승리의 그 커다란 규모 자체가, 변화가 잇따를 것이라는 민중들의 희망을 증대시키고 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노동당이 선거 이전 자신들을 노동조합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노력했던 사실 바로 그것 때문에, 노조로 하여금 재분배 수단들로의 복귀 압력을 철회하도록 기만할 수 있는 노동당 정부의 능력이 제약받을 가능성이 있다.

보다 일반적으로, 영국 사회 곳곳에는 다양한 이단적 세력들이 존재하는데, 가령, 차도와 공항의 개발을 방해하는 녹색 활동가들이나 작년 인도네시아로의 무기 선적을 온몸으로 막은 '보습' 운동(Ploughshare movement){역주 - "창을 녹여 보습으로"라는 성서 문구에서 이름을 따온 영국의 평화운동}, 그리고 자신들이 투자한 회사의 통제에 대해 신경을 기울이고 있는 '윤리적' 주주들이 그들이다. <가디언(Guardian)>지와 <인디펜던트(Independent)>지는 메이저의 패배에 나름의 기여를 했고 신노동당 대변인들의 잦은 무례한 조처들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이들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가디언>이 그랬던 것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노동당 지도부를 비판하고 있다. 중간 계급의 이의제기는, <메일(Mail)>지와 <익스프레스(Express)>지가 뉴베리 우회로(Newbury Bypass)를 점거한 젊은 생태 활동가들인 '습지(Swampy)'와 '동물(Animal)'을 민중 영웅으로 인정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다.{역주 - 이들에 대한 기사가 {길}지 3월호에 실려 있다.} 녹색 캠페인은 도로 건설 계획을 변경시키는 데 성공했고, 셸(Shell)사와 BP[영국 석유]사로 하여금 소비자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지 않을 경우 부딪힐 반발을 두려워하게 만들었다.

반항의 가장 생동감넘치는 징표는 젊은 층들, 특히 '거리를 되찾자' 운동(Reclaim the Street){{) 역주 - 영국의 신흥 급진 환경운동. 위의 소개글에 나와있는 fHUMAN 런던 위원회의 글을 참고할 것.}}으로부터 지원받고 있는 '난장판 저항(rave protests)' 등으로부터 나오고 있다.{역주 - 영국 급진좌파 청년들의 정서를 알고 싶다면, 최근 빌보드 차트 정상에까지 오른, '영국판 꽃다지' Chumbawamba의 음반 <Tubthumper>를 들어볼 것.} 4월 12일에는 만오천명 가량의 시위대가 해고된 리버풀의 항만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해 개최된 시위의 와중에서 깃발을 휘날리고 트럭 경적을 울리며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을 점거했다. 한 무리의 무정부주의자들은 2 주일 동안 로빈 쿡을 만나려고 기다리다가 급기야는 외무성의 열린 창문으로 뛰어들어가 문서들을 낚아채고는 이를 창문 아래 군중들에게 흩뿌렸다. 난장판 문화의 흥미로운 미시(micro) 정치는 영감을 보여주지만, 그 자체로 흐지부지 끝나버릴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거시 정치에 대한 이러한 무시를 공유하고 있지 않으며 이들중 다수는 실제로 토니 블레어에게 투표했다(18세에서 29세에 이르는 인구중 57%가 노동당에 투표했으며, 이는 1992년 이래 19% 증가한 것이다).

당 대변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대 노동조합들은 토니 블레어의 거듭된 부상에 큰 역할을 했으며, 필요할 경우에는 당 회의에서 블레어를 지지하고 노조 블럭 투표를 행하기도 했다. 노조들은 노동당 선거운동 기금에 천백만 파운드를 기부했고 적어도 만 명의 노동자들을 전화 및 우편 캠페인을 위해 차출해주었다.{Seumas Milne, "Silenced Voice", The Guardian, 5월 12일자.} 조합원 수는 여전히 그 최성기에 훨씬 못미치지만, 현재 노조는 상대적으로 많은 신뢰를 얻고 있으며 실업의 감소에 따라 보다 막강한 협상력을 보유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노동당의 승리는 예전의 혹독한 패배들에 의해 위축되었던 투쟁 정신을 되살리는 데 기여하고 있다. 공식적 파업 행위가 역사적으로 보아 상당히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긴 하지만, 비공식적이고 지방 수준에 국한된 파업이나 파업 찬성 투표는 이전보다 더욱 널리 확산되어왔다.

 

UK나라(Ukania)에의 도전

새 정부의 첫 번째 행동, 그리고 '여왕 연설(Queen's Speech)'[수상 취임연설]에서 공표된 정부의 목적은 개혁의 방향을 낡은 영국 국가기구의 새로운 결합을 고무하는 데로 맞추려는 토니 블레어의 시도를 반영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실제 세계에서의 계급관계의 상처는 논외로 하고, 상상적 공동체의 잠재적이고 난해한 영역에 들어설 것이다.{역주 - 여기서 '상상적 공동체'란 '민족'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민족을 Imagined Community로 정의하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이론에 따른 것이다. B. 앤더슨, {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 윤형숙 옮김, 나남, 1991.} 켈트 주변부(Celtic fringe)의 독특한 정치 문화가 신노동당의 '한 국민 국가'라는 수사에 하나의 문제를 제기할 것이라는 것이, 그리고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의회[영국의 중앙의회] 출입 기자들에게는 잘 납득되었던 것도 에딘버러(Edinburgh)나 글라스고우(Glasgow)에서는 엉뚱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스코틀랜드 민족당(Scottish National Party, SNP)이 정부가 제안한 단계적 이행안을 지지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한, 스코틀랜드 의회(Scottish parliament) 설립 계획은 주민투표에 의해 인준될 것이며, 웨일즈 자치회의(Welsh assembly) 역시도 인준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스코틀랜드 주민투표는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할 것인데, 그 첫 번째는 의회 구성 원칙에 대한 것이며, 두 번째는 스코틀랜드 외회가 조세제도를 운용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닐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투표에서 22%의 지지를 얻은 SNP는 스코틀랜드 의회로 하여금 모든 과세를 통제하도록 만들려 하겠지만, 이는 협상의 대상이 되지 못할 것이다. 신노동당은 입법안의 제안 내용을 극소수의 세목만을 운용(주로 인상)할 수 있는 권한에 제한하려 할지 모르겠는데, 이러한 입장변화는 반발을 낳을 수 있으며 노동당 자체의 스코틀랜드 의원들 다수에 의해 거부될 것이다. SNP로선 많은 부분 상징적인 것에 그치는 자치정부의 수단들이라도 일단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데, 왜냐하면 에딘버러 의회의 계획은 이미 '스코틀랜드인의 협약과 권리청원(Scottish Convention and Claim of Rights)에 의해 일종의 인민 '주권'의 표현이라고 규정된 바 있기 때문이다.{Isobel Lindsay, "The Autonomy of Scottish Politics", NLR 191, 1992 1-2월호.를 보라.}

선거운동 기간 동안 토니 블레어는 '주권'은 웨스트민스터에 남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주권이 자신과 같은 잉글랜드인 의원에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할 만큼 어리석었다. 어떠한 상상가능한 노동당 입법안 하에서든, 그것이 합법적인 것이라면, 주권은 그것이 지금 존재하고 있는 저 최고 의회(Crown-in-Parliament)에 남는 것이지 결코 블레어 같은 잉글랜드인 의원들에게 남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스코틀랜드 민중의 인식 논리는 그러한 합법성조차[즉, 최고 의회의 존중조차] 지향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분리주의가 신속히 세력을 잡을 것이란 말이 아니다. 다만 스코틀랜드인들의 연방주의적 열망에 대한 웨스트민스터 정치가들의 무감각함이 분리주의적 층들을 쉽게 충동질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스코틀랜드 의회를 소집하기 위한 선거이든 그것이 치루어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것이지만, 일단 그것이 소집되기만 한다면 웨스트민스터의 노동당 정부로서는 에딘버러 의회가 자신의 새로운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힘들 것이다. 또다른 어리석은 방향전환의 사례로서, 노동당 대변인은 선거기간 동안 확담하길, 아무리 주민 투표가 세금 운용의 권리를 스코틀랜드 의회에 부여하더라도 그 의회가 세금을 인상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총선에서 노동당은 56%의 스코틀랜드인의 지지를 얻었지만, 이러한 인상적인 결과조차도, 그것이 일년 뒤에, 더구나 지금은 예상할 수 없는 상이한 전반적 맥락 하에서, 비례대표제에 의해 치뤄질 스코틀랜드 의회에 있어서도 이러한 구성이 유지될 수 있다는 걸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스코틀랜드 의회 주민투표는 결과적으로 영국의 삐걱거리는 구조 곳곳에서 변화에의 압력을 증대시킬 것이며, 이는 단지 웨일즈에 국한되지만은 않을 것이다. 가장 분명하게는, 북아일랜드에서의 새로운 출발의 압력이 존재한다. 신페인당(Sinn Fein)은 두 명의 의원을 당선시켰고 당내 통합을 이루었으며 당이 1996년에 얻었던 득표율을 근소하게나마 증가시켰다. 게리 아담스(Gerry Adams)와 마틴 맥귄네스(Martin McGuinness)의 득표는 그들의 독특한 공화주의적, 민족주의적 계획에 대한 놀라운 지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두 개의 민족주의 정당은 주 전체에서 둘 다 합쳐 40.2%까지 득표율을 높였다. 사실 이는 토니 블레어로 하여금 영국 전체에서 의회상의 압승을 거두게 한 득표율보다 단지 4%만 적은 것이며, 민족주의자들이 얼스터(Ulster)[친영 개신교도가 다수인 도시]에서 다수가 될 날의 전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노동당이 차지한 다수의석의 규모 때문에 노동당은 북아일랜드 연방주의자[친영 개신교파] 의원이 이전 의회에서 수행했던 캐스팅 보트 역할에 의지할 필요가 없어졌다. 스코틀랜드가 점차 자치화되어가면서 얼스터에 대한 런던의 지배의 부조리도 더욱더 분명해질 것이다.

사실 스코틀랜드 의회 자체가 얼스터에 대한 스코틀랜드인들의 문화적 연계[켈트족 문화라는 일치감]를 상기키면서 대영제국 탈퇴(British disengagement) 요구에 힘을 보태줄 것이다. 벨파스트(Belfast)에서의 5월 16일의 연설을 통해, 블레어는 신페인당과의 협상 시작, IRA(Irish Republican Army, 아일랜드 공화군-역주)가 휴전을 받아들일 경우 신페인당의 평화협상 참여 보장 등을 제시함으로써 중도 민족주의 지도자인 존 흄(John Hume)을 기쁘게 해주었으며, 동시에 연방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서약함으로써 연방주의자들의 주요 지도자인 데이빗 트림블(David Trimble)을 달래주었다. 만약에 이것이 영국 정부가 더 이상, 존 메이저가 그랬던 것처럼, IRA가 평화협상 전에 무장해제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 것을 의미한다면 '평화 진전'을 위한 밝은 출발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토니 블레어가 공표한 바 있는, 케케묵은 연방주의 문화로의 전향은, 북아일랜드가 본토와는 다른 정치 세계를 분명히 이루고 있다는 사실과 어울리지 않는다. 사실 노동당은 그곳에서 후보자를 내지도 않고 있으며 '연방주의적'이라 칭해지는 보수당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떤 국면에서 영국 정부는 --'잉글랜드 중심성(middle England)'을 선언하면서-- 점점 더 공허하고 그릇되어가기만 하는 연방에 대한 호소를 갖고 논쟁에서 요행을 찾으려 시도하기보다는, 차라리 그들의 이웃들과의 타협에 이르도록 하라고 얼스터 개신교도들을 설득해야만 하게 될 것이다.

 

선거 개혁

보수당의 패배는 영국 의원 선거 제도의 소선거구 제도(first-past-the-post system)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전술적 투표'에 의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총선 이전에 노동당과 자유민주당은 선거제도의 개혁에 대한 국민투표의 실시와 관련하여 상호양해에 도달했으며, 이에 의해, 필요한 입법절차가 일종의 양당 합동 수임위원회(a joint commossion)를 통해 이끌어질 수 있게 되었다. 노동당을 대표해서 이 협약을 체결한 장본인인 로빈 쿡은 <옵저버(Obsever)>지 5월 3일자에서 이것이 [총선후인 지금도] 여전히 효력을 지닌다고 선언했다. 수임위원회는,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이 현재의 투표 방법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방식을 택할 것인가 하는 두 방안 중 하나만 간단히 선택할 수 있도록 하나의 선택지를 제안하게 될 것이다. 뉴질랜드에서는 두 단계의 국민투표 과정을 설정해서, 유권자로 하여금 처음에는 그들이 투표 체계를 바꾸길 원하는지에 대해 표를 던지고, 다음에는 다양한 대안들중 그들이 어느 것을 선호하는지에 대해 투효하도록 했다. 제안된 수임위원회는 새로운 정당들이나 소당파 그룹들의 위협을 최소화할 체계에 끌리게 될 것이며, 그래서 진정으로 비례대표적인 독일식 보완 선출 체계(German-style Additional Member system)가 아니라 최소강령주의적 AV(선택투표제, Alternative Vote)나 단일 양도 투표제(Single Transferable Vote, STV)를 최종 지지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너무나 뻔뻔스럽게도 그 어떤 정치적 창조물이나 자신의 창조주를 불신임할 수 있다.{역주 - 노동당은 비례대표제 지지 유권자들의 뜻을 쉽게 저버릴 수 있다는 뜻.}

신노동당 의원들에 대한 여론조사는 48%라는 다수가 비례 대표제를 지지했음을 보여주었다.{The Observer, 5월 11일자.} 반면에 새 정부는 자신의 공약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느긋한 태도를 보였는데, 새 정부가 차기 유럽 의회 선거를 비례대표제 하에서 치루게 할 입법안을 공표하지 않은 것은 주목을 요한다.

스코틀랜드 의회를 위해 채택된 선거 체계는 어떠한 최종 국민투표에서 제공된 선택에든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아무튼 스코틀랜드 의희 설립의 전망은 노동당으로 하여금 잉글랜드의 투표를 최종 반영하는 데 있어서 보다 공정한 방식을 도입하는 것의 이점을 인식하도록 고무시킬 것이다. 사실 잉글랜드의 투표중 노동당 몫의 단지 2%만이라도 변동한다면, 노동당으로부터 잉글랜드 의회에서의 다수당 자리를 박탈할 수 있다. 노동당 전략가들은, 현재 노동당의 뻥튀기된 다수의석 이면을 직시하여, 스코틀랜드 출신 의원들이 잉글랜드에만 영향을 미치는 입법안을 위해서는 더 이상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투표하지 않으리란 것을 고려해야만 하게 될 것이다. 일종의 영연방 위원회(a English Commons Committee)인 영국 의회가 잉글랜드에만 관계된 입법안을 결정하도록 허용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격론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PR(비례 대표제)의 도입은 잉글랜드 의회 의석의 다수를 획득하기 위해 노동당이 자유민주당과 합작할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다.

민주화는 5월 1일의 보수당 참패에 결정적 역할을 한 영국의 다른 지역들에게 그러한 것처럼 잉글랜드에게도 하나의 이슈이다. 사실 노동당이 이 지역에 대해 약속한 개혁은 다른 지역들의 경우 이상으로 개혁의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가렛 대처와 존 메이저의 정부는 비밀스럽고 중앙집권적인 방식으로 통치했는데, 그들은, 이전 보수당 상원의원인 퀸틴 호그(Quintin Hogg)가 표현한 바, '선출된 독재(elective dictatorship)'를 가능케 하는 영국 정부 구조의 이러한 측면을 거의 밑창이 닳도록 활용했다. 보수당 정부는 지방 정부로부터 권력을 박탈하는 146개 이상의 분리된 법안들을 통과시켰는데, 이를 통해 지방 정부의 권한을 약 5만명의 고봉급 관리들이 참모진을 이루는 비선출직의 독립 정부 기관(Quango) 집합체에 이전했다.{이에 대한 호소력 있는 공격으로는 Simon Jenkins, Accountable to None, London 1994.를 보라.}

노동당은 시정부를 시수준에서 선출하고 시장을 직접 선거로 선출하는 안을 런던 시민으로 하여금 선택하게 하는 또다른 주민총투표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독립 정부 기관들은 아직 그대로 남아 있고, 신노동당이 보수당 출신 지명자들을 자기 사람들로 교체하는 것 이상의 과감한 변화는 계획하고 있지 않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한 존재한다. 새 정부는 유럽 인권 협약(European Convention of Human Rights)을 영국 법률 안에 통합시킬 것이라고 약속했지만, 다른 한편 일종의 정보 자유 법령(a Freedom of Imformation Act)을 도입하겠다는 공약은 포기해버렸다.존 마르코프(John Markoff)는 '민주화 물결'의 역사적 증거에 대해 쓰고 있는데, 이러한 물결은 현재 영국의 해안을 덮치기 시작했다.{John Markoff, "Really-existing Democracy", NLR 본호(no.223).}

대처 정부 말기에 '88 헌장 운동(Charter 88)'이 건설되면서 영국 국가의 민주화를 위한 수많은 의제들이 제기되었다.{역주 - 'Charter 88' 운동에 대해서는 {읽을꺼리} 1호를 참고할 것.} 실제로, 선거 개혁 국민투표나 인권 헌장에의 충성과 같은, 노동당 강령 안의 다양한 민주적 요소들의 현존이 보다 잘 설명되려면 이 운동의 존재를 고려해야만 한다.{Anthony Bennet의 The Defining Moment, London 1994.은 어떻게 이행과 민주화가 성취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여전히 가장 훌륭한 밑그림이다.}

세습 귀족의원직의 폐지 같은 다른 의제들은 1980년대 초반 벤주의적 급진주의(Bennite radicalism){역주 - 80년대 토니 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노동당 좌파의 당내 개혁운동을 일컫는 말. {읽을꺼리} 1호를 참고할 것.}의 유산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새 행정부의 핵심 성원들중 많은 수가 한때 벤주의자였거나 최소한 트리뷴 그룹(Tribune Group){역주 - 노동당의 전통적 중도좌파. {읽을꺼리} 1호를 참고할 것.}의 좌익 성원들이었다.{사실 새 정부의 구성은 정부에 대한 토니 블래어의 지배력이, 아직까지는, 불완전함을 보여주었다. 벤주의 운동이 있던 시기에 수립된 규정에 따라, 수상은 그의 각료를 대부분, 전회기 의회 안에서 그림자 내각 각료로 선출된 이들 가운데에서 뽑아야 했다.}

세습 귀족의원직의 폐지는 '여왕 연설'에서 공표된 입법안의 첫 번째 패키지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만약 이것이 결국 ['88 헌장 운동'에 의해] 제안된 형태대로 실행되게 된다면 이를 통해 새 정부는 특권 집단 바깥의 사람들을 굳이 동원할 필요 없이도 상원(House of Lords)을 노동당측 지명자들로 채워넣을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 하원(House of Common)이 제공하는 기능과는 다르면서 그것을 보충하는 방식으로 사회를 대변하는 새로운 민주적 권한을 상원에 부여할 것을 고안해본다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세습 귀족직의 폐지만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이는 노동당이 그 개혁을 또한 약속한 바 있는 왕정의 정당성 위기를 경향적으로 가중시키게 될 것이다.

 

중도적 급진주의의 문제들

 그러나 민주적 조치들이 매우 필요한 것이라 할지라도, 새 정부는 그것을 넘어서는 수준에서 달아오른 사회적 기대에 관심을 기울여야만 하게 될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첫 열흘 동안 내각의 지도급 장관들의 일련의 대담들과 성명들은 급진적이고 희망적인 인상을 주었다. 고든 브라운(Gordon Brown){역주 - 현 내각의 재무상인 노동당 우파 지도자. {읽을꺼리} 1호 참고.}은 복지 국가를 재건할 조기 예산안과 수십만 실직 청년들을 위한 유용한 일자리들의 발견을 약속했다. 로빈 쿡은 지뢰 수출 중단, UNESCO 재가입, 모든 미래의 무기 계약들의 윤리적 재검토, 통신사령부 정보 수집 센터(GCHQ intelligence gathering center)에서의 노동조합 설립 인정, EU 사회헌장(Social Chapter of EU)에의 영국의 즉각 가입 등을 공표했다. 존 프레스코트(John Prescott){역주 - 현 내각의 부수상이며 노동당 부당수인 당내 중도좌파 지도자. {읽을꺼리} 1호 참고.}는 좌익 노조 지도자인 아이언 맥카트니(Ian McCartney)에게 최저임금제와 고용 권리 보장제의 도입을 책임지는 장관직을 맡겼다.

하지만 이 모든 좋은 소식들에 드리워져 있는 것은, 어떤 중대한 장기적 이슈들에 대해서는 급진주의가 전혀 의제 안에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새 정부는 NATO를 동부 유럽으로 확장시킴으로써 여전히 세계 제 2위의 핵무장력을 지니고 있는 러시아와의 사이에 새로운 긴장을 촉진시키는 위험한 결정을 지지했다. 국내 전선에서는, 앞으로 기본 금리는 재무상이 아니라 잉글랜드 은행에 의해 설정될 것이라는 고든 브라운의 언명이 있었다. 이 소식은, 예상되었던 대로, 런던 금융가(City)에는 기쁘게 받아들여졌지만, 많은 전문 관측통들에게는 과거 노동당 재무상들의 행태의 심상치않은 반복으로 인식되었다. 과거 노동당 재무상들은, 이런 식으로, 새 정부로부터 정책 집행의 유용한 지렛대를 박탈하고는 결국, 오인된 금융적 공정성의 재단 앞에 제조업의 열기와 사회[정책]적 관심을 희생시키는 경향을 줄곧 보여왔던 기구들에 보다 많은 권력을 이전하곤 했다.{이러한 지적은 Larry Elliot의 The Guardian 5월 7일자 기사, Anatol Kaletsky의 The Times 5월 9일자 기사, William Keegan의 The Observer 5월 11일자 기사에 실렸다. 하원 재정위원회의 고참 성원인 Diane Abbort도 유사한 비판을 제시했다.}

의심할 바 없이, 브라운 자신은, 시장이야말로 시장 자체의 요소들중의 하나를 충족시키는 데 있어서 다른 어느 것보다도 더 강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는 근거에서, 새로운 체제가 결국 금리를 낮추게 될 것이라고 희망한다. 그러나 브라운이 보유하고 있는 영향력의 가닥이 무엇이든, 그것은 명백히 일종의 포기의 행태일 뿐이다. 사실 비판의 화살을 정부로부터 잉글랜드 은행으로 돌릴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록 보다 손쉽게 취할 수 있는 방책이긴 하지만.

브라운의 결정은, 선거 전의 공약에서부터 논의의 중심에 등장하여, 경제 행정의 전통적 수단들을 채택할 그의 재량을 또한 제한시키고 있다. 필자는 중간-수입 소득자들에게 부과되는 세금을 증세하지 않기로 한 신노동당의 공약에는 기만적인 면이 있다고 주장한 바 있는데, 동일한 지적이 보수당 재무상 케네스 클라크(Kenneth Clarke)에 의해 입안되었던 1998년도, 1999년도 지출 계획을 수용하겠다는 고든 브라운의 성명에 대해서도 가해질 수 있다. 하지만 선거전 예산안에서 이 뚜렷이 '감상적인(wet)' 보수당 재무상의 징표들은, 그럴 수도 있으리라고 짐작된 것보다는 덜 진지한 것이었다. 실제로 많은 비평가들은 클라크 자신도 자기의 지출 계획을 충족시킬 충분한 재원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역설해왔다. 브라운이 직면하고 있는 핵심 문제는 10조 파운드 혹은 그 이상으로 평가되는 지출 적자를 벌충하기 위해 누가 혹은 무엇이 과세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노동당은 민영화된 공공재부분의 이윤에 일종의 불로소득세(a windfall tax)를 부과할 것이라는 공약을 벌써부터 중요시해왔으며, 이는 4조 파운드를 끌어올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부유층에 대한 과세의 한계 비율을 올리지 않겠다는 공약--브라운이 최초로, 약간은 망설이면서 끌어낸 공약--에도 불구하고, 노동당 재무상은 여전히 세금 공제를 재정비하여 지불능력을 가장 많이 지닌 이들에게 부담을 지울 수 있는 여지를 지니고 있다. 그가, 그자신 더 자세히 암시했던 바 대로, 연금 기금에 지불된 이익배당금들에 부과되는 ACT세(ACT tax)를 경감시키로 한 계획을 철회한다면, 그는 매년 3조 5천억의 세입을 증대시킬 수 있다. 이 조치는 또한 다음의 두 가지 근거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1) 이는 평균 수입 이상으로 소득을 얻는 이들에게 주로 부과될 것이다. (2) 이는 기업으로 하여금 이익배당금을 분배받기보다는 차라리 투자를 하도록 고무시킬 것이다.

그러나 엄청나게 요구되는 지출을 위해 재원을 확보하기로 한 조치들에 대해서 좌파가 비난을 감행하기는 어려운 반면, 제안된 바 '무료 점심'(free lunch)[무료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란 뜻]세와 같은 류의 세금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과잉수익세는 일회적인 것이며 그 부담이 소비자들에게 전가되지 않도록 면밀한 배려가 취해져야만 한다. 이익배당금에 대한 세금 공제의 폐지나 경감은 경제로부터 제기되는 청구를 제거하지 못한다. 정부 재원의 방출이 지방 당국의 주택 정책으로부터 제기되는 청구를 제거하는 것도 아니다. 청구를 통제하는 데 실패할 경우 이는 새로이 독립한 잉글랜드 은행으로 하여금 금리를 인상하도록 쉽게 재촉할 수 있다. 이는 투자를 위축시킬 것이며 --가장 나쁘게는-- 파운드 스털링의 가치를 인상시키고 이를 통해 수출을 위축시킬 것이다. 1998년까지 영국은 경기 순환 회전(go-stop cycle)의 저 친숙한 '정지(stop)' 국면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노동당의 새 재무상은 빈곤층에게 이전시키기 위해 주로 부유층으로부터 거두어지는 부유층 공략용 세금제도를 발견해야만 한다. 노동당의 반곬 경제학자인 상원의원 데자이(Lord Desai)는 담보나 기금 납부에 대해 적용되는 세금 공제를 표준 10% 비율로 경감시키자고 제안했다.{Meghnad Desai, "A Word to the Wise", Tribune, 1997년 5월 16일자.}

이러한 방향전환은 문제의 본질인 정부총수익 증대를 낳을 것이며, 경제부흥을 위한 설비 투자 기금 이외에도,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약화시키고 잉글랜드 은행이 금리 인상 정책을 채택하는 것을 방지할 것이다. 이는 또한 브라운이 선언한 바 10% 이하로 전체 세금을 인하하려는 목적과도 조화할 수 있을 것이다. 과세 계층상의 상위 40%에 속하는 이들에 의해 요구될 수 있는 거의 200가지 종류의 세금 공제가 존재한다. 이러한 류의 모든 세금 공제의 폐지 또는 제한은 자동적으로 조세 체계의 재분배적 성격을 증대시킨다. 또한 비행 연료, 살충제, 휘발유와 같은 세목들에 대해 부과되는 '녹색' 세금들의 여지도 풍부히 존재한다.

진보적인 방식으로 세입을 늘릴 수 있는 새 정부의 능력은 교육 체계, 보건 서비스, 사회 기반시설, 그리고 복지 공급 등의 부흥을 위해 아주 중요하다. 민중의 기대들을 하향평가하려는 신노동당의 시도들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에 투표한 이들--혹은 자유민주당에 투표한 이들--은 공공 서비스를 포괄하는, 약속된 바 '국민적 혁신'을 고대하고 있다. 신노동당 자신이 자신의 정책의 우선 사항은 '교육, 교육, 교육'이 될 것이라고 언명했다. 전체 인구 중에서 교육이나 보건 부분의 예산을 조단위로까지 정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시민들중 대다수는 학교와 대학, 진료소와 종합병원의 상태를 스스로 감시할 수 있다. 신노동당이 클라크로부터 이어받은 지출 계획은, 이러한 까다로운 시험에서 낙제하지 않으려면, 상당한 정도로 보완되어야만 하게 될 것이다.

영국은 지난 20년 동안 선진 자본주의 사회들중 가장 불평등한 사회가 되어왔으며, 인구중 최고 빈곤층 10%는 실제로 1979년에 비해 1997년 현재 13% 더 악화된 상태에 처해 있는 반면, 최고 부유층 10%는 1979년에 비해 현재 두배나 더 부유해졌다. 최근의 OECD 조사는 GDP 대비 사회 보장, 보건, 교육 지출에 있어서 영국을 21개 회원국들중 17위의 자리에 올려놓고 있다. 이러한 배경은 --새 정부가 취하는 거의 모든 일들이 이전 상황에 대해서는 하나의 개선이 될 것이기 때문에-- 새 정부의 과제를 보다 쉽게 만드는 측면도 지니고 있지만, '한 국민 국가'에 대한 수사는, 4, 5년 안에 불평등을 경감시키는 방향으로 실질적인 진보가 취해지지 않을 경우, 신노동당 자신에게 유령으로 돌아와 괴로움을 주게 될 것이다.

노동당의 엄청난 승리는 노동당이 대면하길 회피할 수 없는 두 개의 보다 거대한 과정들이라는 배경과 대조를 이루며 이루어졌다. 그것은 유럽 통화 통합과, 연금 기금에 기반하는 새로운 자본주의 축적 체제의 모험, 즉 '노년 자본주의(grey capitalism)'라고 불릴 수 있을지도 모르는 보다 장기적인 이슈이다.

 

유럽 차원의 뉴딜을 위한 기회를 잡기

유럽 통화 통합에 관한 한, 보수당의 패배는 보수당에게 오히려 구명줄을 제공한다. 소위 유럽통합 회의론자들(Eurosceptics)이라는 시끄러운 왈자패의 웅성거림에 의해 유럽 통합에 빨간 불이 켜진 상태에서, 신노동당은 선거전 매우 신중한 의견을 고수했고 영국이 유럽연합에 합류하기 전에 또다른 국민투표를 실시하게 될 것이라고 약속했다. 로빈 쿡은, 매우 영리하게도, 유럽연합에서 사회적, 생태적 기준이 유지되리라는 것과 유럽 수임위원회(European Commission)와 그 통화 당국이 민주적 감시에 복속되리라는 것 등을 보장하는 보다 굳건한 조치들이 EMU[유럽통화연합]에 동반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마스트리히트 기준(Maastricht criteria)의 대부분을 충족시키기 때문에 영국으로서는 이런 사고를 강제하는 데 있어서 아주 적당한 위치에 있으며 따라서 그러한 사고의 실천에 있어서 이탈리아인들과 프랑스인들의 지지를 끌어내고 있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영국 자체에서는 EMU에 대한 반대가 전반적으로 반동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는 천박한 민족주의를 북돋고 있으며, 사회 헌장을 두려워하는 고착취 작업장 고용주들, 직장의 상실을 두려워하는 금융가 거간꾼들, 그 사업적 연계가 유럽이 아닌 영어 사용 세계에 얽혀 있는 신문 소유주들 등의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만약 새 정부가 유럽으로의 진입을 일회전에 통과시킨다면 정부는 많은 즉각적 이득을 거두게 될 것이며, 1970년대의 노동당 정부를 그토록 분열시키고 약화시켰던 유럽 문제 국민투표와 같은 종류의 문제를 미래로 떠넘기는 것을 피하게 될 것이다. 유럽 통합에 즉각적으로 결합하게 된다면, 노동당 정부는 화폐 통합의 형태와 이에 수반되는 제 조치들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할 가장 좋은 기회를 확보하게 될 것이다. 이후 8개월 안에 국민투표가 치뤄진다면, 그리고 노동당 내각이 외관상 통일된 전선을 보여준다면, 노동당은 보수당의 심대한 혼란을 활용할 수 있다. 유럽연합으로 인한 타격을 유권자들에 대한 호소의 주재료로 삼은 후보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2천만 파운드를 뿌렸음에도 불구하고 제임스 골드스미스 경(Sir James Goldsmith)의 당은 단지 3%의 득표율을 보였으며, 포티요(Potillo)나 고어만(Gorman) 같은 보수당의 저명한 유럽통합 회의론자들은 평균 수준을 넘어서는, 지지층의 동요로 인해 고생했다. 더 나아가, 다수의 명성있고 유능한 보수당원들, 특히 케네스 클라크 같은 이들은 보수당의 반(反)유럽연합 캠페인 결의를 무시하면서 EMU를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화폐 통합과 관련해서는 심대한 대중적 애증병존이 잔존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투표 캠페인이 취해진다면 이는 참주선동과 정당한 우려를 구분하는 계기를 제공할 것이다. 유럽 수임위원회의 '민주적 적자(democratic deficit)'[케인지언적 팽창정책]는 대체로 올바로 비판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논의는 유럽 의회에 대해 책임질 수임위원회와 장관 회의를 구성하길 거부하는 자들의 입에서 나온 쓰레기에 불과하다.어떠한 노동당 정부라도 영국의 '민주적 적자'와 대결하는 동시에 유럽에서의 책임의 증대에 대해서도 동등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다수의 이슈들과 관련하여 이는 웨스트민스터에 집중된 권력의 상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게 될 테지만, 사실 신노동당은 이자율에 대한 권한을 잉글랜드 은행에 이전하면서 이미 이러한 권력 상실을 묵인했던 것이다. 이 후자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이를 유럽통합으로의 조기 진입을 위한 일종의 전주곡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로빈 쿡이 EMU 자체를 통해 EMU를 이루어가는 경로에 대해 협상하면서 어떠한 성공을 거두든지 간에, 최종 합의는, 자신있게 예상할 수 있는 바, 유럽이 필요로 하는 뉴딜(New Deal)을 결여한 [부정적인] 장기적 노선을 던져줄 것이다.{물론 자크 들로르(Jacques Delors) 자신은 디플레이션 효과를 가져오는 마스트리히트 기준에 대해 100조 규모의 유럽 공동체 차원의 기반구조 건설 계획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지만, 이는 독일통일에 의해 초래된 긴장들 때문에 독일정부의 지지를 얻는 데 실패했다. 생태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유럽 차원의 케인즈주의(Euro-Keynesianism)가 지중해 연안에 차도를 늘리는 따위의 일종의 [반(反)환경적] 악몽으로 여겨졌을 수도 있다. 유럽연합을 위해 요구되는 뉴딜은 상대적으로 빈곤한 지역에 경제적 생활을 자극하는 것만을 의도하지 않을 것이며, 광범위한 규모의 공해를 역전시키길 또한 추구할 것이다.}

현재 유럽에서 실업율은 지난 1930년대 공황의 최절정기보다도 더 높다. 가장 보수적인 정부들조차 경쟁적 긴축과 사회적 덤핑의 동인들에 의해 포위당한 것을 절감하고 있다. 하지만 분리된 경향들을 그냥 두고 보는 것은, 놀고 있는 인간 및 화폐 자원들을 동원하여 현재의 상황을 역전시키는 정합적 시도를 북돋는 데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한다. EMU라는 조건은 분명히 인플레이션 유발적 해결책들을 잠재울 테지만, 이제까지의 인플레이션은 공공 서비스 부문이나 국가기구의 이름으로 지급되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아무런 현실적 이득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최악의 경우 EMU와 그 경영자들은,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줄곧 그래왔던 것처럼, 사회적 저항의 운동들에게 가시적인 공격목표를 제공하는 데 그치고 말 것이다. 최선의 경우 이는 뉴딜이 수행될 수 있고 지배적 정치경제학이 변형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할 것이다.

 

자본을 '사회화하기'?

이러한 논의를 통해 필자는 여기서 해결되기에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한 주제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바로 세계화의 압력과 '노년 자본주의(grey capitalism)'이다. 많은 저자들은, 세계적 경쟁과 자본의 세계적 유동성 등의 현실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일국적이거나 지역적인 경제정책이 여전히 어떤 자율성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회적 덤핑의 논리는 저항될 수 있고 실제로 저지되고 있다고 역설해왔다.{이를 처음 지적한 이들중의 한 명은 "The Global Economy", NLR 168, 1988년 3,4월호에서의 David Gordon이었다. 하지만 다음도 참고하라. Paul Hirst & Grahame Thompson, "Globalization: Ten Frequently Asked Questions and Some Surprising Answers", Soundings, no 4, 1996년 가을호; Chris Harman, "Globalization: Critique of a New Orthodoxy", International Socialism, no 73, 1996년 겨울호; Greg Albo, "The World Economy, Market Imperatives and Alternatives", Monthly Review, vol. 48, no. 7, 1996년 12월호(국역-그레고리 엘보, [세계경제, 시장의 지상명령, 그리고 대안들], {이론} 17호, 1997년 여름). 보다 폭넓은 공중이 야수적인 시장 세력의 제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Will Hutton의 The State We're In이 베스트셀러가 되고나면서부터이다. 신자유주의 모델에 대한, 또다른 설득력있는 비판으로는 Maurice Glasman, Unnecessary Suffering, Verso, London, 1996을 보라.}

만약 영국이 실제로 '유럽의 심장부'에 위치하고 있다면, 그리고 유럽에서 그 제휴 대상을 발견한다면, EU는 세계화의 해체적인 영향력으로부터 부분적으로 격리된 경제적 지역권을 그 자체로 구성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국의 경우 대처주의의 유산과 런던 금융가의 존재로 인해 야수같은 자본의 습성을 길들여야 하는 과제가 특수하게 요구된다. 케인즈주의의 재탕이나 관습적인 자본 통제는 불충분할 뿐만 아니라 반(反)생산적임을 드러내보일 것이다. 신노동당 행정부는 잉글랜드 은행의 독립성을 증대시키고 '조세 및 지출(tax and spend)'[정책]을 포기함으로써 금융 운영의 전통적 수단들을 스스로, 그것도 아주 저속하게 폐기해버렸다. 그러나 만약 성장이 궁지에 빠지지 않는다면, 만약 양적 성장이 향상된다면, 그리고 만약 현재 드러나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 공략된다면, 새로운 경제 조종 기제가 수립되어야만 하게 될 것이다.

필요한 것은 '어떤 시장의 사회화(a socialization of the market)'가 아니라 --비록 이것 역시도 환영받을만한 것이지만-- 자본의 초보적 '사회화'(an incipient 'socialization' of capital)이다. 당헌(constitution)에서 자뭇 엄숙하게 제 4조(Clause Four)를 폐기해버린 어떤 정당{역주 - 블레어 주도하에,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언급한 당헌 제 4조를 폐기해버린 영국 노동당을 두고 하는 말.}을 배경으로 하여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꼭 달밤에 체조하는 것처럼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당강령 제 4조는 아무튼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이는 자본이 '생산의 지점에서' 포획될 수 있다는 낯익은 좌파적 관념에 뿌리를 두었던 것인 데 반해, 자본의 지배력에 대해 실제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오히려 가치실현과 축적의 순환이기 때문이다.

막강한 자산 소유자들의 자본에 대해 실시되는 전통적 통제는, 지난 십년 동안 앵글로-색슨 국가들에서는, 연금 및 보험 기금들이 의미심장한 성장을 이룸에 따라 이완되어왔다. 이러한 중대한 발전과 그 의도되지 않은 부수-효과들로 인해 자본에 대한 새롭고 차별적인 통제양식의 건설에 착수할 수 있을 처방 입법안들에 대한 요구가 제기되었다. 리차드 민즈(Richard Minns)는 앵글로-색슨적 자본축적 모델의 동력을 이룰 정도로 발전한 연금 기금의 현상적 성장이 실제로 영국 자본주의의 전통적 해악들--투기, '단기 이익 추구'주의, 그리고 국내 제조업 기반의 경시--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노름꾼 자본주의(punter capitalism)'의 현재적 흐름에 자극받아, 금융 체계 안에서의 '[민중의] 목소리'의 역할을 후원하자는 제안, 기금 경영자들로 하여금 기금 수혜자들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만들자는 제안, '사회적'이고 '윤리적'인 규준들을 고수하는 기금들을 우대하는 조치들을 도입하자는 제안, 사회적 조절을 위해 금융 기구의 자기조절을 폐지시키자는 제안 등등이 제기되고 있다.{예를 들어, 다음의 글들을 보라. Robert Pollin, "Financial Structure and Egalitarian Economic Policy", NLR 214; Erik Olin Wright, "Coupon Socialism and Socialist Values", NLR 210; Richard Minns, "The Social Ownership of Capital", NLR 219.}

최근에는 '스테이크홀딩(stakeholding)'에 대한 논쟁{역주 - 이에 대해서는 {읽을꺼리} 1호를 참고할 것.}이 자본 통제 방안들을 양산해냈는데, 그중의 일부는 기만적이거나 그저 장식적일 뿐이고, 다른 일부는 유토피아적이지만, 소수 일부는 현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유용한 제안들로서 적어도 이행기 계획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유용한 조사로서는 Andrew Gamble, John Kelly & Dominic Kelly (eds.) Stakeholder Capitalism, Lodon 1997.을 보라. 그리고 John Plender, A Staking in the Future, London 1996.에서의 논의도 참고하라. 필자는 앞으로 본지의 지면을 통해 '노년 자본주의'와 '스테이크홀딩'에 대해 분석할 것이다.}

이 지면은 이러한 막 움트고 있는 논의 영역을 평가하는 자리는 아니다. 사실 지적되어야 할 중요한 지점은 다만 이런 논쟁이 존재하며 이 논쟁이 미구에 닥칠 정부 지향에 대한 난투극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리라는 것이다. 토니 블레어 자신이 1996년 1월의 싱가포르 방문시 연설에서 '스테이크홀더 경제(a stakehoder economy)'의 장점들을 상찬했지만, 이후 그는 새로운 기업 문화의 필요성에 대한 모호한 기원 이상으로 그 함의를 논의하는 데에서 발을 뺐다. 사실 '스테이크홀딩' 개념은 극히 신축적인 것인 반면, 다른 한 편으로, 이 개념으로부터 모든 시민들이 사회 질서 안에서 손에 만져지는 스테이크(stake, 이익공유 몫이란 뜻-역주)를 지녀야만 한다는 관념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처의 대중적 자본주의[대처 자신의 표어]를 경험하면서 이미 자신의 손가락을 태워먹은 사람들은 뭔가 다른 것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토니 블레어는 장관 지명 초기에 가장 돋보이는 지명을 행했는데, '스테이크홀더 연금(stakeholder pensions)'의 예언자인 프랑크 필드(Frank Field)를 국무장관으로 내정한 것이 그것이다. 국무장관직은 복지 국가의 개혁에 대해 특별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직책이다. 필드 자신은 심히 양가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는 복지제도(welfare)의 기만성을 통렬히 힐난하길 즐기며 근로장려(workfare) 제안에 대한 열광적 지지와 연루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공적으로 소유되는, 책임있는 보편적 연금 위원회(Pension Board)의 설립을 옹호해왔다. 신노동당이 금융 이해에 손을 대려 나서는 것은 거의 기대하기 힘들고 오히려 금융세력을 달래기 위해 애닯도록 노력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는 노조들, 사회운동들, 그리고 좌파의 흥미를 활기차게 돋구지 않을 수 없는 논쟁과 투쟁의 장이 될 것이며, 또한 노조 등의 세력에게 정부의 지향 전반을 둘러싼 전투의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기금이 적절히 축적되고 있고 온전한 책임성을 지니는 연금 위원회라면, 새로운 SIB에 의해 지원받는 한, 두 개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는 연금 기금들로 하여금 현재의 그 비참한 수준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후원할 수 있을 것이며 쇠퇴하고 있는 복지 체계를 회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이는 책임 체계(mechanisms of accountability)를 설치하여 공공 당국과 정책입안 대표자 모두에게 어디에, 그리고 어떻게 기금들을 투자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한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직업별 연금 계획안(occupational pension schemes)에 적용되는 세금 공제는 투자의 물꼬를 조절할 더 나은 가능성을 제공한다. 노동당 재무상이 금융 서비스를 규제하기 위해 '초(超)조절자(super regulator)'라는 직위를 창조한 것또한 수탁자들(trustees)로 하여금 자신들의 기금을 보다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게 고무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수단들은 단지 교환의 통제나 그 비슷한 것들에만 의존하는 정책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자본 운동의 자유를 구속할 수 있다. 게다가 책임있는 제도적 기구는 투자의 우선성과 윤리에 관한 캠페인들의 진앙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필자는, 노동당 압승의 내용은 많은 경우 정세적이고 우발적이며 상당한 부분 보수당에 대한 증오와 선거 체계의 왜곡화 효과에 빚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동당의 새로운 지지층이 거품이었음이 드러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며, 따라서 이에 대한 지속적인 부양이 요구된다. 기금형 사회 보험과 연금 계획안(contributionary social insurance and pension schemes)은, 그것들이 그 유연성을 유지하면서 모든 연령의 시민들의 필요를 수용하고 이를 통해 이들 시민들에게 실질적 성장 속에서의 가시적 스테이크[이해]를 부여하는 한, 이 부분에서 나름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토니 블레어의 브뤼메르 18일?

보수당 통치가 비록 희망적으로 종식되었다고 하더라도 노동당 정치에는 불안한 긴장이 잔존해 있어서 이것이 지금까지 고양되어온 희망을 얼어붙게 만들 수도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 개인숭배주의(personalism)와 권위주의(authoritarianism)이다. 신노동당은 형사처벌 수단을 확충하기 위해 빈번히 민중주의적 호소를 즐기는 것처럼 보이곤 했다. 즉 젊은이들에 대한 야간 통행 금지, 걸인에 대한 공격, '무(無)관용(zero tolerance)' 등등. 이러한 '범죄 엄벌(tough on crime)' 태도는 빈번히 그 예정된 귀결인 '범죄 요인에 대한 엄벌(tough on the causes of crime)'조차 무색케한다.{역주 - 사회안정을 내세운 정책이 결국 약자나 주변층에 대한 공격으로 치닫게 된다는 뜻.}

새 정부가 게이 공동체에 대해 보수당 정부의 경우에 비해 보다 우호적으로 대할 것이라는 예전보다 축소된 공약이나, 여성들에게 더 향상된 대의체계를 부여하려는 당의 성공적이고 언급할만한 가치를 지닌 시도조차 위와 같은 경향을 단지 부분적으로만 상쇄해줄 뿐이다. 이들 환영받을만한 진전들역시도 신노동당 지도부의 권위적이고 참주선동적인 성향을 보다 수용가능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이것의 불안한 실례로는 당의 선거 선언 초안(Party's draft election manifesto)이 전체 당원의 일반 투표에 부쳐졌던 곡예를 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어떠한 변경이나 대안선택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원들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의 실례가 될 수는 없었다. 당 지도부의 실제 의도는 모든 당원들과 의원들을 초안의 최소강령적 프로그램에 묶어놓고 보다 급진적인 조치들에 대한 압력을 약화시키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블레어 자신은 분명히 그 문서에 구애받지 않는 것으로 보였는데, 왜냐하면 그는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즐거이 새로운 구상들--보다 큰 규모의 민영화 같은--을 띄웠기 때문이다. 새 정부의 최초의 가장 깜짝 놀랄만한 조치들중의 하나--잉글랜드 은행으로의 이자율 정책의 이전--는 선언 초안에 실려 있지도 않은 것이며, 최초의 내각 회의 이전에 벌써 공표되었다.

블레어의 허세적인 스타일과, 논쟁을 못견뎌하는 성격은 만약 그것이 영국의 금융 엘리트들, 사회적 엘리트들을 향해 가해진다면 받아들일만한 무엇일 수 있을 테지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렇기는커녕 지금까지 그가 선택한 적대자는 좌파 사람들 아니면 약자의 위치에 있어서 저항하기도 쉽지 않은 노조들이었다. 많은 언론들은, 올해 노동당 전당대회에서, 감사(監査)를 위해 당 지도자를 출석토록 만드는 전당대회의 전통적 권한이 폐지되도록 요구받고 있는 것이 어떤 효과를 지닐지에 대해서 합당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데, 이 조치는 토니 블레어로 하여금 불안하게도 데이빗 오웬(David Owen)을 연상시키는 공적 면면을 취하도록 만들 것이다.

신노동당의 권위주의와 타협주의는 민주화 세력으로서의 그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작년에 신노동당은 경찰 책임자들에게 아무런 사법적 승인 없이도 용의자의 집에 침입하여 감시 기구를 설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법이 통과되는 데 일조했다. 단지 보수적 신문인 <데일리 메일(Daily Mail)>이 이와 같은 자유의 침해에 대하여 공적인 항의을 터뜨린 이후에야 잭 스트로(Jack Straw)는 이 법안을 철회했다. 비록 신노동당만이 비난받아야 할 대상인 것은 아니지만, 정당하게 선출된 신페인당 출신 의원들이 국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절했다는 이유에서 웨스트민스터 의회를 활용할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을 동료 의원들이 승인했다는 것은 주목을 요한다. 이는 단지 의회 규칙의 당파적인 새 해석이나 얼스터 유권자들의 기대에 대한 거부인 것만은 아니었으며, 서약을 거절하는 모든 영국 공화주의자들에 대한 경직된 위협이기도 했다. 아니 차라리, 새로 지명된 장관이 선택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다른 사람이 보도록 손가락으로 십자표시를 만들어서 하는 맹세 관행{역주 - 서양의 습관에 따르면 서약하는 자가 손가락을 십자형으로 만들 경우 이는 거짓 약속을 의미한다. 공화주의적 신념을 지닌 이가 왕정의 장관직을 맡을 수 있게 하기 위해 만든 관습적 편법이다. 결국 전체적으로, 양심의 자유 전체에 대한 위협이라는 뜻.}에 대한 위협이었다.{The Guardian 5월 19일자에 실린 Roy Hattersley의, 핵심을 꿰뚫은 논평을 보라.}

노동당의 전(前)부당수인 로이 하터슬리(Roy Hattersley)는 "토니 블레어가 정치의 바깥에서 정치를 장악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경제 정책은 은행가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의회의 수상 질의 시간(Prime Minister's Question Time)은 폐지되며, 이전 BP사 경영주인 데이빗 시몬스 경(Sir David Simons)은 바로 노동당 지지자가 아니었다는 그 이유로 인해 장관에 지명된다. 하터슬리는 신노동당이 특징적인 방식으로 '이념(ideology)'을 '교조(dogma)'와 동일시하여 경멸하면서 일종의 기술[관료]적 접근(a technical approach)을 선호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소위 혁신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사회주의자들이 계급투쟁이나 도덕적으로 필요한 자원 재분배의 일부라고 간주하는 정책들조차 특정한 사고의 산물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Roy Hattersley, "Pragmatism Must Not Still Conscience", The Guardian 5월 14일자.}

비록 다른 음조이긴 하지만, 티모시 뷰스(Timothy Bewes)도 비슷하게, 신노동당의 수사적이고 도덕설교적인 담론들이 정치적 선택을 전형적으로 회피하고 있으며 '사물의 현상(things as they are)'이 곧 '사물의 당위(as they ought to be)'가 되어야 한다고 쉽게 확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어린이들이 숙제를 해야 한다는 것이 잔디가 푸른 색이어야 한다는 것이나 개가 짖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인 목표가 된다."{Timothy Bewes, Cynicism and Postmodernity, Verso, London 1997, 186쪽.}

프랑스인들이 toutes proportions gardees라고 부르는 것처럼 이러한 두려움을 지나치게 극적으로 만드는 위험을 무릅쓰고 말한다면, 영국의 새 수상인 젊은 토니 블레어와 1848년 프랑스의 새 대통령이었던 젊은 루이 나폴레옹(Louis Napoleon) 사이에는, 다소 작지만 전적으로 하찮은 것만은 아닌, 유사점이 발견되는 것같다. 두 사람 다 약삭빠르게 체제의 붕괴를 활용했으며, 두 사람 다 유행어를 만드는 재주를 지니고 있고, 두 사람 다 국민투표 정치에 현혹되어 있다. 루이 나폴레옹은 카베냑(Cavaignac)의 유혈극 이후에 쇠퇴일로의 공화주의적 대의를 체현하게 되었다. 블레어는 조직된 노동세력에 대한 마가렛 대처의 몽둥이질 뒤에 등장했다. 기묘한 우연의 일치를 통해, 두 사람은 다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문구의 왜곡된 반향을 가탁하여 자신들의 정치 철학을 요약하려 시도했다.

맑스의 이 저작은 이미 잘 알려진 대로 '각 개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전제조건이라고 천명했다. 이를 자신의 구미에 맞게 변형하여 루이 나폴레옹은, 1848년 12월의 그 취임 연설에서, 각 시민의 번영은 만인의 번영의 전제조건이라고 선언했다.{Jasper Ridley, Napoleon III and Eugenie, London 1979, 228쪽. 이 당시 루이 나폴레옹의 추종자들 중에는 당연히 {선언}을 읽었을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토니 블레어는, 자주 인용되는 저 당지도자 선출시의 수락연설(sound-bite)에서, "각 개인의 개인적 덕성"은 "만인의 집합적 권력"에 의해 촉진되어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많은 좌파 역사학자들은 자유주의와 생시몽(Saint Simon)식 사회주의 사이의 뒤죽박죽 결합을 이끌어내려 했던 루이 나폴레옹의 시도를 무시한 채 그를 지나치게 가혹하게 다루어왔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위해 감행한 그의 권력 찬탈 및 운용 방식은, 물론, 심히 반동적이고 비민주적이었으며, 은행에 우호적이면서 진정한 공화주의자들에게는 적대적인 것이었다. 다가올 몇 달과 몇 해 동안 토니 블레어는, 신노동당의 중도적 개혁 처방이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시켜 단지 더 진전된 해결책이나 아니면 억압적 반동에의 호소를 통해서만 이를 다룰 수 있게 되는 처지에 이르게 될지 모른다. 보수당 통치의 종식에 대한 학수고대 때문에 블레어는 신노동당보다 더 급진적인 의제를 제안하는 세력들로부터의 예정된 적대와 대면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이의제기 세력들과 반란 세력들을 잔인하게 짓누르는 쪽으로 경사될 가능성이 꽤 높긴 하지만, 그가 승리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토니 블레어의 브뤼메르 18일'을 쓸 필요가 없게 될 것을 희망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