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상황주의자 운동과 90년대 한국 문화 운동


이원영 (전중앙대강사·정치철학)

 

 

90년대 한국 문화 운동의 좌표

1. 90년대 한국의 문화 연구는 80년대 문학예술 운동에 대한 반정립으로 탄생했다. 90년대의 문화 연구자들은 '자본의 재생산이 인간의 정서나 감수성의 재조직을 통해서 일어나고 있고 문화가 일상화'했기 때문에, '오늘날 문화가 계급 투쟁의 장소로 등장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시대파악 속에서, 그들은 문학 중심의 예술적 장르운동으로서의 문학예술 운동의 협소함을 비판하고 다양한 텍스트들과 실천행위들을 포괄하는 (대중)문화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2. 80년대의 문학예술 운동은 일종의 문화적 전위 운동이었다. 당시의 문예활동가들은 다양한 노선으로 분화되어 있었지만 예술창작과 문예실천을 통해 대중의 계급의식을 일깨움으로써 사회혁명에 이바지하려는 공통의 경향성 속에서 움직였다. 그들은 예술작품을 정치적으로, 즉 계급 투쟁 속에서 이해했으며 예술의 작품적 질도 그 정치성(예컨대 민중성 혹은 당파성)에 의해 규정된다고 보았다. 이것은 종래의 순수주의적 작품이해에 대한 반명제이며 참여주의적 작품해석의 가일층의 구체화였다.

3. 1987년의 자발적인 노동자투쟁은 문화적 전위 운동이 성장한 지반이기도 했지만 그러한 전위 운동의 종말을 예고하는 폭풍이기도 했다.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욕구와 필요들을 표현하는 자율적인 문화실천들(파업과 점거, 가두시위, 노보, 선동대, 노래단, 문예창작단)을 창출함으로써 자신들의 생각과 느낌, 그리고 투쟁을 광범하게 유통시켰다. 80년대의 문예활동가들은 노동자들의 이 자율적인 문화적 표현들을 정치적으로 읽지 못했다. 그들은 그 자율적인 투쟁 문화들을 자생성의 반(半)의식적 문화로 폄하하거나 그것을 공동체주의의 낡은 틀 속에서 해석함으로써 이 새로운 문화 실천들이 행사하는 계급 투쟁상의 역할과 의미를 충분히 읽어내지 못했다.

4. 노동자문화의 자발적 성장을 대상화한 80년대의 문학예술 운동은 강한 배타성을 갖는, 즉 대중의 문화적 활동의 방법적 다양성을 인정치 않는 예술 방법 논쟁과 방법적 실험 속에서 자기정당성을 찾는 보수주의를 드러냈다. 그것은 미적 활동을 텍스트화한 작품에만 국한하여 이해하는 경향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작품들의 예술성을 내용적·형식적 규범주의에 따라, 즉 정해진 내용, 정해진 형식을 얼마나 잘 구현하는가에 따라 주로 이해했다.

5. 이 때문에 대중들의 문화적 자기표현들의 새로움과 다양성, 그리고 복수성은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으며 문화적 자기표현들의 연결과 상호보완은 더욱이 무시되었다. 또한 노동자문화와는 별개로 급속히 증대하고 있었던 대중 문화는 상업주의 문화로 손쉽게 규정되었다. 노동자 대중 문화의 대두와 상업적 대중 문화의 범람 속에서 문학예술 운동이 취한 대중화 전술은, 삶의 차원에서 대중과 결합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손쉬운 소재와 통속적 언어들로 자신의 엘리뜨 경향을 포장하는 것에 머물렀다.

6. 90년대 문화 연구자들은 대중 문화를 단순한 상업주의 문화 이상으로 보기 시작함으로써 대중의 문화적 생산력에 대한 시각전환을 달성한다. 대중 문화를 자본의 일방적 활동 시공간으로서가 아니라 적대적 계급 투쟁의 시공간으로 이해함으로써, 주로 소비 속에서 관철되는 대중의 자율적 문화능력(변별과 선택, 외면과 후원)을 생산적인 것으로 평가함으로써, 이들은 대중은 자본의 상업적 이익추구의 대상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난다.

7. 대중의 일상적 삶의 변혁적 힘에 대한 탐구 역시 90년대 문화 연구자들의 중요한 기여 중의 하나이다. 전위주의적 시각 속에서 대중의 일상적 삶은 운동의 퇴조의 산물이며, 이 시기에 전위들은 대중에서 독립된 이론활동과 내부조직화에 관심을 돌려야 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일상적 삶은 사건적 고양을 위한 지루한 기다림의 시기로 설정되었다. 대중의 일상적 삶과 일상 문화를 대중의 자기가치화의 시간으로 파악함으로써 이들은, 대중은 전위의 의식화의 대상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난다.

8. 한국의 90년대 문화 연구는 1960년 후반의 혁명적 과정 속에서 탄생한 서구의 문화 연구와는 달리 1988년 8월 이후의 수동적 반혁명 과정 속에서 탄생했다. 이러한 조건은 90년대의 문화 연구에 중요한 한계를 부여한다: 노동자 문화에 대한 경시, 대중 문화-고급 문화 구별의 유지, 그리고 대중 문화에의 매몰.

9. 90년대의 문화 연구의 가장 큰 결함은 노동자 문화에 대한 경시이다. 상품형태로 제시되는 대중 문화에 대한 폭증하는 관심은 영화, 텔레비전, 스포츠, 비디오, 컴퓨터게임, 노래방, 대형건축물, 가요, 광고, 만화 등을 진지한 연구의 대상으로 끌어들이지만 노동자들의 삶 자체와 상품화되지 않은 노동자문화를 무의식적으로 연구대상에서 배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것은 90년대의 문화 연구가 자본의 반혁명에 대해 끊임없는 투쟁을 전개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문화적 자기표현활동으로부터 동떨어져 있음을 의미하며, 노동자문화를 반의식적 문화의 시각에서나마 고려와 작용의 중요한 대상으로 설정해온 80년대 문학예술 운동으로부터도 후퇴한 실천임을 의미한다.

10. 90년대 문화 연구는 '고급 문화에서 대중 문화로'라는 슬로건 속에서 대중 문화와 고급 문화의 구별을 유지함으로써 대중의 문화적 전유활동에 일정한 제한을 부여한다. 이 명제는 고급 문화를 대중이 자신의 삶 속에 통합해야 할 문화적 명세에서 배제함으로써 대중의 문화적 생산활동의 질을 낮추고 문화적 전유활동의 폭을 좁힌다. 이러한 생각은 마르크스의 {자본론}, 발자크, 에밀 졸라, 똘스또이, 고리끼, 황석영, 방현석의 소설들, 브레히트, 김수영, 김남주, 박노해, 백무산의 시들,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 등이 일종의 '고급 문화'이면서도 대중의 투쟁의 유통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만든다.

11. '문학에서 문화로'라는 슬로건은 대중의 문화적 삶이라는 좀더 포괄적인 영역을 드러냈다는 점에서는 진보적이지만 문학 중심으로 구축되었던 기존의 위계체계 대신에 대중 문화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위계체계를 다시 구축한다는 점에서는 퇴행적 측면을 갖는다. 문학 중심의 문화적 위계체계관은 80년대 문학예술 운동의 문화적 전위주의의 사상적 특징이었다. 반면 대중 문화 중심의 문화적 위계체계관은 대중 문화 속에서 그것의 양적 확대나 질적 성격 전화를 전략적 침로로 파악하는 대중 문화 개혁주의의 사상적 특징이 된다.

12.오늘날 대중 문화 개혁주의는 대중 문화의 무조건적 확산을 찬미하면서 그것을 뒤따르는 사제적 대중 문화 지상주의의 경향으로 나타나거나 대중 문화의 모순성, 양면성, 갈등성에 대한 학술주의적 연구를 바탕으로 그것을 행정적 문화 정치학으로 발전시키려는 문화적 학술주의의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양자는 서서히 논쟁적 분립과 대결로 나아갈 것으로 보이며 이로써 80년대의 문화적 '전위주의/공동체주의' 대립이 '문화적 학술주의/대중 문화 지상주의'의 대립으로 모습을 바꾸어 재현될 기미를 보여주고 있다.

13. 이 양자에 결여되어 있는 것은 노동자 계급 대중의 삶에 대한, 그것의 자율성에 대한 구체적 인식이다. 노동자 계급의 삶의 자율성에 대한 인식은 자본의 삶의 자율성에 대한 인식을, 이 두 항의 전략적 적대에 대한 인식을 전제한다. 다만 후자를 전자에 종속적인 2차적 자율성으로 이해할 뿐이다. 대중 문화 지상주의 경향은 대중 문화 속에서 대중의 자율적 문화능력의 적극적인 표현을 읽는다는 점에서 대중 문화에 대한 상업론적 해석에 대한 훌륭한 해독제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대중 문화를 대중 자신의 단성(單聲)적 목소리로 이해함으로써 대중 문화를 객관적 적대구조의 외부에 위치 지운다. 이 때문에 대중 문화 지상주의는 대중의 자율성이 표현되는 상황의 복잡성에 대해 주의깊게 탐구하지 않으며, 대중 문화 밖에서 나타나는 자율성 표현의 형태들, 양식들, 범주들을 경시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로써 대중 문화 지상주의는 상업적 대중 문화가 자본에 합병되어 이윤추구의 도구로 되고 있으며, 대중 문화가 시장 속에 놓여짐으로써 그것이 내포한 자율성의 가능성이 충분히 실현되지 못한다는 점을 무시하게 된다. 이 경향이 대중들의 새로운 문화적 표현들의 의미를 날카롭게 드러내면서도 그것에 상응할 만큼의 비판적 내실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문화적 학술주의 경향은, 대중 문화를 관통하는 양면성과 갈등성을 전체적으로 고찰하면서 대중 문화를 짓누르고 있는 자본의 그림자를 밝혀 내는 동시에 대중 문화 속에 있는 탈주의 힘들을 파악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점에서 변증법적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갈등의 더 깊은 뿌리, 즉 자본과의 적대 속에 놓인 과정으로서의 대중의 삶에까지 나아가지 못함으로써, 즉 하나의 대안적 문화 구축의 전망을 분명히 설정하지 못함으로써 대중 문화 속의 부정적인 합병성(合倂性)을 버리고 긍정적인 저항의 힘을 살려 내는데 그치는 쁘루동주의적 변증법으로 기운다. 이 경향의 문화정치학이 정책대안의 형성이라는 개혁주의 프로그램 안에 안주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14. 대중 문화론의 이 두 경향은 90년대의 패배주의적 분위기 속에서 수입된 포스트모더니즘과 대립하기보다 그것과 공존하면서 그것을 '민족문학/리얼리즘'이라는 80년대 문학예술 운동의 민족문학파 --스딸린주의의 붕괴 속에서 80년대 문학예술 운동의 급진 좌파는 방향을 상실하고 해체되거나 문화 연구로 이전하거나 대중 문화 운동 속에 해소되었다-- 와 대결하는 데 이용한다. 이것은 70년대 지식인 문학운동의 전통을 고수해 나가고 있는 90년대 민족문학운동이 포스트모더니즘과 대립하면서 쟁점을 '모더니즘 대 리얼리즘'의 울타리 속으로 좁혀 놓은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15. 포스트모더니즘은 80년대까지의 모더니즘적 운동들(특히 전위 운동들)의 한계를 드러내 주면서 동시대의 새로움을 강조하고 또 그 새로움에 대해 전면적으로 고찰하도록 강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문화적 충격이었다. 90년대 초에 전위주의에 대한 반성과 고백이 하나의 유행을 이룬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물결과 무관하지 않다. 대중 문화 연구로의 대상 전환 역시 이러한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의 일환으로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16. 포스트모더니즘은 포스트모던 상황에 대한 신비화이자 그것에 대한 소외된 해석이다. 그것은 마르크스의 상품 물신론, 루카치의 사물화론, 상황주의의 스펙타클론, 비판이론의 일차원 사회론을 시뮬레이션 이론으로 극단화시킨다. 모든 것은 시뮬레이션의 하이퍼리얼리티 속에 포섭된다. 사회적인 것은 대중(mass) 속에 용해된다. 대중은 블랙 홀이며 사회적 의미를 붕괴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다. 재현으로서의 리얼리즘, 일체의 계몽 기획, 총체성과 대서사, 탈시뮬레이션적 사회 변혁은 불가능하다. 객체가 소멸한 만큼 주체 역시 불가능하다.

17. 현대 사회가 시뮬레이션이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은 분명하다. 경제와 정치, 문화 등에서의 모든 현실이 시뮬레이션됨으로써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석은 현대 역사에 대한 하나의 철저히 기술주의적이고 관조적인 해석이다. 시뮬레이션은 하나의 지배적 계기일 뿐이며 그것을 가능케 한 테크놀로지 발전은 필연적 법칙이 아니라 자본의 전략에 속한다. 시뮬레이션은 대중의 힘, 그들의 경험과 지성과 감성의 흡수를 위한 자본의 전략이자 모의(模擬)의 방법일 뿐이다.

18. 시뮬레이션이 대중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권능은 그 틈새를 뚫고 새어나온다. 이 대중의 권능에 눈을 돌리고 대중의 삶의 입장에서 출발함으로써만 비로소 포스트모던 상황에 대한 주체적·감성적·비판적·혁명적 해석이 가능해진다.

19.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반란(1992),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봉기(1994), 프랑스의 노동자 파업 투쟁(1995), 한국의 총파업(1996-7)으로 이어지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대중 투쟁의 새로운 고조 속에서, 주체의 소멸을 정당화한 포스트모더니즘 이데올로기의 퇴조가 뚜렷해지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주체들의 이러한 부상 속에서, 90년대 초에 포스트모더니즘과 대립해 온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의 퇴조 역시 뚜렷해지고 있다.

20. 한국에서 90년대 중반 이후 지금까지 시뮬레이션 사회의 탈시뮬레이션 전략의 가능성은, 68년 혁명 속에서 구조주의적 마르크스주의를 지양했으며 70년대 중반에 개시된 반혁명 속에서 포스트모더니즘에 자리를 넘겨준, 포스트구조주의 속에서 모색되어 왔다. 들뢰즈/가따리의 포스트구조주의는 욕구와 육체의 존재론에 입각하여 통제사회로부터의 탈주, 즉 탈시뮬레이션의 가능성을 시사한다. 그러나 포스트구조주의는 1968년 혁명에 대한 아카데미즘의 급진적 응답에 지나지 않았다. 오늘날 계급 투쟁 정세의 변전은 하나의 철학 혁명으로서의 포스트구조주의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상황주의자 운동 경험에 대한 참조

21. 상황주의자 운동은, 예술 운동에서 발전하여 조직적 정치 운동으로 전개되었다(1957∼1972)는 점에서 철학적·사상적 경향으로서의 포스트구조주의와 구별된다. 포스트구조주의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험을 견뎌내지 못했듯이, 상황주의자 운동 역시 반혁명과 포스트모더니즘의 시험을 이겨내지 못했다. 그러나 새로운 혁명의 철학으로서의 포스트구조주의가 오늘날의 혁명과정에서 중요한 참고물이듯이, 새로운 혁명의 문화 투쟁이었던 상황주의자 운동 역시 오늘날의 혁명 과정에 긍정적 형태로든 부정적 형태로든 중요한 참고물이 될 수 있다.

22. 상황주의자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0여년간에 모던한 예술과 급진 정치의 전통적 형식들 대부분이 돌이킬 수 없이 부패하거나 소진되어 대기업, 나치즘, 스딸린주의 등과 협력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이들은 또 친자본주의적 정당들이나 그 "사회주의적" 대안들 모두에서, 거대한 비인간적 관료들이 개인들의 삶을 지배하고 통제하면서 그것을 파괴하고 있기 때문에 유토피아(U-topia)는 글자그대로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들은 기존의 형식들과 절연하고 무에서부터 모던한 예술과 급진 정치를 재발명하기 위해, 이 양자를 통합된 프로젝트 속에서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그 통합된 프로젝트는 예술/정치를 진보의 객관성이나 역사의 요구가 아니라 일상적 삶의, 그리고 개인 주체성들의 요구와 기대들에 기초지우는 것이었다. 상황주의자들은 모던 예술과 급진 정치가 지금-이곳에서, 사회 다수의 나날의 삶에 만족을 주고 즉각적인 효과를 발휘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들은 미래의 만족만을 약속하면서 현재의 고통을 정당화하는 예술과 정치를 스펙타클적인 것으로 보아 거부했다. 그들은 스펙타클 거부의 가장 적극적인 대안이 "구축된 상황"(constructed situation), 즉 '단일한 환경의 집단적 조직과 사건들의 자유로운 유희에 의해 구체적이고 정교하게 구축된 삶의 순간'으로 보았는데, 상황주의자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도출되었다.

23. 1930년대 다다이즘 및 초현실주의 전통의 비판적 계승이자 1950년대 레뜨리스트(Lettrist) 운동의 조직적 발전으로서의 {국제 상황주의자}(SI; Situationist International)는 유럽의 소수 아방 가르드 그룹들에 의해 1957년에 결성되어 3개의 단계를 밟아 나간다.

24. 제1단계(1957∼1961): 조직의 구성원들이 예술과 정치의 새로운 혼성물의 창조적 표현들에 헌신한 시기. 이 몇 년간 그들은 수많은 종류의 예술기반의 정치적 작품들을 생산한다. 그들의 잡지, 소책자, 팜플렛, 스크랩북, 녹음 테이프, 강연, 회의, 전시, 그림, 건축 모델, 설계도, 영화, 보이콧, "스펙타클적인" 문화적 사건들의 파열 등등. 이 시기에 '구축된 상황'은 정치적으로 급진적이며,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사람들의 협력과 참여에 의해 이루어지는 해프닝(happening)과 비슷한 것으로 이해되었다.

25. 제2단계(1962∼1967): SI가 급진 정치보다 전위 예술에 더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추방하면서 보다 엄격한 규율을 갖춘 정치 조직으로 변신하는 시기. 이 무렵 급진적인 실험 예술가들이 축출되고 급진적인 실험 이론가들이 인입되었다. 조직에서 축출된 사람들 --이른바 나쉬스트들(Nashists)--은 '상황주의자 제2인터내셔널'을 조직하고 암스테르담에서 {상황주의자 타임스}(Situationist Times)를 발간하면서 여러 해 동안 활동을 계속했다. 상황주의자 (제1)인터내셔널은 예술기반의 정치적 작품들을 생산하는 것으로부터 스펙타클에 대한 비판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으로 강조점을 이동한다. 이에 따라 상황주의자들의 활동 공간도 전시 공간에서 대학 교실로 이동한다. 저명한 인공지능학자의 대학 강연에 대한 습격을 돕고, [학생 생활의 빈곤에 관하여]를 집필하고, {스펙터클의 사회}(기 드보르, 1967)와 {일상생활의 혁명}(라울 바네이겜, 1967)을 출간한 것이 이 시기이다. 이 시기에 '구축된 상황'은 1871년의 빠리 꼬뮌, 1921년의 크론쉬타트 반란, 1956년의 부다페스트 노동자 평의회와 같은 대중 봉기로 이해된다.

26. 제3단계(1968∼1971): '구축된 상황'은 곧 봉기라는 인식 하에서 SI가 프랑스 68년 혁명에 참여하여 그 사건들에 대한 보도, 기록, 그리고 해석에 전념한 시기. SI는 알뛰세를 포함한 프랑스 공산당이나 사회민주주의자들, 그리고 일부의 상황주의자 제2인터내셔널 멤버들과는 달리, 갑작스런 반란의 도래를 예측하고 있었고, 이 때문에 그들은 5월 혁명 기간에 자신감을 갖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그 결과 5월 반란은 상황주의자적 특징을 띠었는데, 정치시(詩)적 낙서와 슬로건들, 대중 문화로부터 차용되어 그것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 이미지들, 일상적 삶의 급진적 변형을 위한 요구들 등이 그것이다. 상황주의자들은 1968년에 발간된 르네 비네(Rene Vienet)의 책 {점거 운동에서의 분노와 상황주의자들}과 {국제 상황주의자} 12호(1969년 9월)에서 68년 혁명에 대한 탁월하고 유용한 설명을 제시한다. 그러나 68년 혁명은 상황주의자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그들은 1917년의 러시아, 1918년의 독일과 이탈리아, 1956년의 헝가리에서 그러했듯이 혁명이 노동자 평의회를 낳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상황주의자 조직은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68년 혁명의 학생과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나 노동자 정당에서 독립적으로 행동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이 (노동의 자주관리 조직인) 노동자 평의회를 건설하리라는 상황주의자들의 기대를 저버리면서 곧장 노동 거부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상황주의자들은 다음 발걸음이 무엇이어야 할지, SI가 이전처럼 계속 존재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 확실한 전망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1970년 말에 바네이겜이 사퇴하고 많은 멤버들이 1968년 5월의 '스타'로서의 명성에 집착했다는 이유로 제명된다. 1971년에 잔존한 멤버들이 그룹을 해체하고 각자의 활동을 추구하기로 결정하며 이듬해에는 1968년 5월 반란, 상황주의자들의 스펙타클적 시야, 바네이겜의 사퇴 등을 다룬 {인터내셔널에서의 진짜 분열}을 출간한다. 이후 상황주의자들은, 지배체제에 투항하지도 새로운 운동을 조직하지도 않고 조용히 사라지는 길을 택한다.

27. 자본주의적 분업은 예술가를 하나의 전문가로, 상품 생산자로 위치지운다. 상황주의자들은 현대의 예술이,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구경꾼으로 만드는 자립화된 스펙타클적 체제, 분리된 일반화의 권력의 일부임을 직시한다. 예술의 스펙타클화의 시기에는 두 가지의 기획이 가능하다: 1)스펙타클적 응시 속에서 그것을 죽은 객체로서 보존하는 것 2)사회 속의 실천적인 부정의 조류와 통합하여 스펙타클 비판을 발전시키는 것. 상황주의자들은 두 번째의 기획을 선택한다.

28. 상황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예술-스펙타클에 대한 실천적 비판은 예술 폐지의 기획이다. 그것은, 분리된 일반화의 권력이 제공하는 개념들로 스펙타클을 비판하는 스펙타클에 대한 스펙타클적 비판(사회학), 혹은 스펙타클에 대한 구조주의적 연구가 보이는 스펙타클에 대한 변명들과 구별된다.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는 현대 예술의 종언을 나타내는 양대 조류로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의 현대적 표현이지만, 자신을 예술의 장에 속박시킴으로써 예술-스펙타클에 대한 실천적 비판을 완성하지 못했다.

29. 예술-스펙타클은 예술의 자본에의 통합이며, 자본의 일반 권력의 한 지절(枝節)로의 예술 활동의 응고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예술의 폐지없는 예술의 실현, 예술의 폐지 없는 예술의 억압은 모두 불가능하다. 상황주의자들은 예술의 억압과 예술의 실현을 예술 폐지라는 단일한 과정의 양 측면으로 설정한다. 예술의 폐지는 삶으로부터 분리된 예술의 해체이며 예술을 자본의 지절에서 떼어내어 삶 속에 해소·통합시키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30. 그러나 대중의 삶에 대한 상황주의자들의 생각은 부정적이고 유토피아적이다. 스펙타클의 사회 속에서 대중의 삶은 구경꾼의 삶, 즉 수동성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스펙타클은 자본과 국가의 독백일 뿐 그 속에 대중의 목소리는 담겨 있지 않다. 웅성거리는 민중의 소리에 귀기울였던 바흐찐과는 달리 상황주의자들은 현대 사회 속에서 오직 기존 질서의 소리만을 듣는다. 상황주의자들의 스펙타클론에 존재론적 적대는 물론이고 변증법적 모순마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삶은 유토피아적 부정성 속에서만 탐구되고, 구경꾼 프롤레타리아트는 아방 가르드들의 매개를 통해서만 움직일 수 있는 수동적 존재로 설정된다. 레닌주의는 상황주의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영혼이다.

31. 상황주의자들은 스펙타클을 삶의 전도로 올바르게 이해한다. 노동이 인간 활동성의 소외 내에서의 표현이고 삶의 소외로서의 삶의 표현이듯이(마르크스) 스펙타클 역시 소외 속에서의 삶의 표현이다. 하지만 상황주의자들은 삶의 전도의 결과인 스펙타클을 전도된 삶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 해석한다. {스펙타클의 사회}을 발간한 지 23년 뒤인 1990년에 기 드보르는, 스펙타클이 더 큰 힘을 축적했고 새로운 방어기술을 획득했으며 비판적 입장들도 흡수하여 '통합된 스펙타클'로 발전했다고 진단하면서 더 이상 사회혁명의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관주의적 입장으로 전환한다. 그의 자살은 그로부터 4년 뒤의 일이다.

32. 기 드보르와는 달리, 그람시는 스펙타클을 변증법적 종합으로, 자본에 의한 대중의 문화적 권능의 합병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열어 놓았다. 이후 신그람시언들의 문화 연구 속에 계승되는 이러한 시각이 자본을 소외된 삶으로 이해한 마르크스의 시각에 더욱 가까우며 스펙타클을 죽음과 등치시키지 않고 전도된 삶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33. 그러나 스펙타클에 대한 상황주의자들의 총체적 부정, 스펙타클 외부에서 능동적으로 새로운 상황을 구축해 나가야할 필요성에 대한 강조는 스펙타클의 이중성의 인식보다도 몇 배나 더 소중하다. 상황주의자들은 '상황 구축'의 개념을 부단히 발전시켜 갔다: 예술적 차원에서의 이벤트나 해프닝에서 일상 생활의 구성적 힘으로, 일상 생활에서 대중 봉기로. 비록 이러한 사고가 전위주의에 의해 크게 질곡 당하고 있지만, 그것은 삶의 힘과 그 가능성에 대한 깊은 승인을 함축한다. 스펙타클은 자본의 변증법적 힘으로부터 독립적인 대중의 삶의 소외된 표현이며 삶의 해방은 그 변증법적 과정에서의 분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스펙타클적 통합이 더 완전하게 되면 그럴수록 스펙타클로부터 삶의 분리의 가능성은 그만큼 커진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삶의 분리의 가능성이 커지면 커질수록 스펙타클적 합병에 드는 에너지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34. 상황주의자들은 스펙타클을 총체적으로 부정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관념적으로 부정하는 데 그친 것만은 아니다. detournement(물꼬돌리기: 과거와 현재의 예술적 생산물을 보다 높은 환경적 구축 속에 통합하는 것)와 derive(표류: 도시 사회의 조건에 연결된 실험적 행동 양식으로, 변화된 환경들을 재빨리 통과하는 기술)의 개념을 통해 상황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스펙타클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과 투쟁하며, 그것을 역이용할 수 있는 전술들을 표현했다. 이것은 오늘날 대중 문화 매체들을 능동적으로 역이용할 가능성을 시사해 주는데, 천안문의 학생들과 사파티스타에 의한 인터넷 이용, 팩스, 라디오, 영상매체, 출판 매체의 투쟁 유통 매체로서의 이용, 그리고 60년대의 투쟁 속에서 록 음반들의 선동 수단으로서의 이용 등은 그 경험적 사례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문화 전략을 위한 몇 가지 단상들

35. 상황주의자 운동도 68년 혁명도 스펙타클을, 그리고 예술을 폐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스펙타클은 시뮬레이션으로 확장되었고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가 거대한 시뮬레이션 게임으로 변화되었다. 오늘날 대통령 선거, 전쟁, 증권 거래소, 텔레비전, 영화관 등등은 시뮬레이션의 시공간들이다.

36. 삶의 노동화의 산물인 시뮬레이션 사회는 역설적이게도 노동의 가치화하는 힘을 약화시킨다. 가치법칙이 위기에 처하면서 삶이 노동으로 소외되어야 할 필요성도 줄어들고 있다. 노동의 일반화에 기초한 사회주의 프로젝트들(지금까지의 국가 사회주의, 그리고 여러 유형의 평의회 사회주의 이론들)이 점점 현실적합성을 상실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68년 혁명에서 대중들은 노동 일반에 대한 거부의 방향으로 나아감으로써 삶의 구성의 이러한 변화를, 그리고 사회의 코뮌적 재구성이 더 이상 사회주의적 이행기를 요구하지 않음을 증언했다. 그들은, 커뮤니티가 삶의 소외로서의 노동을 거부하며, 노동을 삶에로 재통합하려는 투쟁들 속에 내재함을 증언했다.

37. 시뮬레이션 사회가 성장해 갈수록 그것은 대중의 삶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 부족을 드러내고 있다. 대중은 아직도 시뮬레이션의 그물 속에 붙들려 있지만 완전히 수동적인 자세로 붙들려 있지만은 않다. 현존 사회 속에서 대중은 점점 예측불가능하고 통제불가능한 존재로, 카오스적 힘으로, 하나의 아나키로 요동친다. 시뮬레이션 게임의 확실성도 점점 옅어지고 있다. 그것은 지금 결코 독백이 아니다. 시뮬레이션 사회 속에서 대중들은 웅성거리고 있고 심지어는 아우성치고 있다.

38. 상품화된 대중 문화는 그 웅성거림과 아우성의 부정적 표현이다. 수많은 드라마, 수많은 영화, 수많은 소설들이 아직도 기존 질서의 낡은 이데올로기들을 대량 복제하고 있지만 점점 더 많은 대중 문화 작품들이 대중의 새로운 욕구들에 영합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대중 문화는 결코 질서의 일방적인 독백이 아니며 중립적 시공간도 아니다. 그것은 삶과 자본이 투쟁하고 있는 모순에 찬 시공간이다.

39. 그러나 시장과 문화의 상품화는 삶의 문화 구축이 벗어날 수 없는 필연적 조건이 아니다. 오늘날 문화 연구의 약점은 마치 대중의 문화적 자기표현이 상업적 대중 문화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상업화된 대중 문화의 시민사회적 공간에 매몰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중의 자율적 삶에 연결되지 못하는 문화 연구, 문화 정치학은 스펙타클에 대한 스펙타클적 비판의 위험을 피하기 어렵다. 대중들은 시뮬레이션의 식민화하는 권력 내부에서 자신의 힘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와는 달리 그 권력에서 탈주하여 독립하려는 경향도 보여 준다. 가능한 한에서의 취업 기피, 결근과 파업, 반란과 점거, 수업 거부, 혼인과 출산의 기피, 투표 불참, 투쟁 현장에서 유통되는 혁명적 예술 작품들, 그리고 봉기 등은 시장, 상품화, 시뮬레이션의 메커니즘 내부에 갇혀 있지 않다. 이것들은 상품화의 메커니즘과 시뮬레이션의 메커니즘을 깨뜨리고 그것에서 빠져나가는 대중들의 자율적인 문화적 자기표현들이다. 이것은 아방 가르드의 개입과는 별개로 대중 자신이 구축하는 새로운 상황들, 즉 삶의 문화이다.

40. 민중가요와 록, 그리고 상업화된 대중 문화의 일부는 대중들의 이 자율적인 삶의 문화들을 고무하고 유통시킨다. 예를 들어 96년 겨울의 총파업에서 부활한 민중 가요는 파업 투쟁의 대오를 확산시켰으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을 비롯한 일련의 노래들은 학생들을 학업의 강제에서 이탈시키고 완고한 학교 질서에 충격을 가하기도 하고, 그들의 팬클럽들은 저항적 소수자의 목소리로 사회를 향해 발언한다. 또 일부의 록음악은 기존 질서에 대한 대중의 저항을 담아내기도 한다.

41. 자율적인 삶의 문화는 자본의 시뮬레이션적 스펙타클의 문화로부터 분리될 뿐만 아니라 두 가지 이유에서 노동의 찬미로부터도 분리된다: 1) 근본적으로는 노동이 삶의 소외를 표현해 왔기 때문이고 2) 역사적으로는 자본이 테크놀로지를 광범위하게 동원하면서 노동이 가치화의 원천으로서의 지위를 서서히 박탈당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노동자 계급 대중의 긍정적 문화는 시뮬레이션의 문화도, 노동 문화도 아닌 삶의 문화로서의 성격을 띠게 된다.

42. 삶의 문화는 기존의 모든 문화적 산물들을 비판적으로 흡수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흡수의 작업 속에서 고급 문화와 대중 문화의 구별은 무의미하며, 문학이 중심인가 문화가 중심인가라는 위계주의적 관점도 필요하지 않다. 현실주의인가 표현주의인가(혹은 리얼리즘인가 모더니즘인가)라는 예술 방법상의 구별 역시 그 자체로서는 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구별은 해당 작품이 대중의 삶의 자기가치화, 투쟁의 유통에 기여하는가 자본의 가치화, 투쟁의 소멸에 기여하는가의 맥락 속에서만 의미를 지닐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삶의 문화는 자기가치화를 생산하는 복수성의 문화, 다양한 주제들-표현 방법들-형식들을 결합하는 다양성의 문화, 소외 거부로서의 삶의 전 사회적 확장을 꾀하는 유동성의 수평주의 문화를 지향한다.

43. 상황주의자들(situationists)은 자신들의 활동이 상황주의(situationism)로 이해되는 것을 거부했다. 그들은 '기존의 사실들에 대한 어떤 해석의 이론'을 시사하게 되는 '상황주의'라는 용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용어이며, '상황 구축의 이론이나 실천적 활동에 관계하는 사람'으로서의 '상황주의자'라는 용어만이 의미를 갖는다고 주장했다. 이와 비슷하게 삶의 문화는 기존의 여러 문화들을 분류하고 그 중 어떤 경향을 지지하는 분류학적·해석학적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가치화의 입장에서, 삶의 소외된 표현으로서의 노동, 상품, 스펙타클, 시뮬레이션을 거부하면서 그것들을 다시금 삶의 지평으로 재통합하려는 노동자계급 대중 자신의 부단한 운동을 지칭할 뿐이다.

(동국대 교지에 실림)